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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8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28 조회수 : 40

복음: 마태 2,13-15.19-23: 이집트 피난 
 
 
1. 가정, 강생의 신비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 도구
오늘은 성가정 축일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신비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 공동체인 ‘가정’을 통하여 구원이 역사 안에 뿌리내리도록 하신 사랑의 신비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시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인간의 품, 곧 가정의 품을 원하셨다.”(Sermo 184,1) 즉, 하느님은 구원의 계획을 가정의 형태로 실현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사는 나자렛의 삶을 통하여 인류의 삶을 완전히 체험하셨다. 따라서 강생의 신비는 단순히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이 가족의 일원이 되셨다.”는 사건이기도 하다. 
 
2. 가정의 시련과 하느님께 대한 신뢰
오늘 복음은 “이집트 피난” 사건을 다룬다. 아기 예수, 마리아, 요셉은 예언자들의 말처럼(호세 11,1)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피난길에 오른다. 천사는 요셉에게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라.”(13절) 말하며, 가족을 한 몸으로 묶는다. 이 표현은 “분리될 수 없는 사랑의 연대”를 상징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묵상한다. “요셉은 단지 순종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의 보호자였다. 그는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아기와 어머니를 보호하였고, 그들의 피난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앙의 행위였다.”(In Matthaeum homiliae, 8,2) 이 나자렛 가정은 고난의 한복판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며, 사랑으로 서로를 지탱하는 가족의 모범을 보여준다. 가정의 신앙은 평화로운 순간에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주는 사랑 안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3. 나자렛의 사랑: 일치와 협력의 모범
아기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으로서 부모의 보호가 필요했다. 마리아와 요셉은 단순히 아이를 양육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함께 이룬 협력자들이었다. 교부들은 이 점을 강조한다. 성 암브로시오는 말한다. “요셉의 침묵은 믿음의 언어였고, 마리아의 순종은 은총의 통로였다.”(Expositio in Lucam, II,45) 이렇듯 가정의 신앙은 말보다 순종과 행동으로 증거되는 것이다. 그들의 일치는 인간적인 사랑의 조화이면서 동시에 하느님 뜻에 대한 응답의 일치였다. 
 
4. 가정의 본질: 사랑 안의 개방성
나자렛 성가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첫 번째 교훈은, “가정의 참된 의미는 사랑 안에서만 존재한다.” 사랑은 모든 시련을 이기게 하고, 서로를 결합해 주며, 심지어 가정의 상처마저 치유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말했다. “성가정 축일은 가정이 지녀야 할 모든 가치, 사랑, 헌신, 희생, 정덕, 생명 존중, 노동, 평화, 환희를 이해하는 열쇠이다.”(Homilia in Festum Sanctae Familiae, 1980) 사랑이 없는 가정은 구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사랑만이 가정을 회복시키며,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나게 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 그분이 현존하시는 곳에 참된 가정의 생명이 있다. 
 
5. 가정의 신앙적 사명: 하느님께 열려 있는 공동체
두 번째로, 가정은 하느님 계획의 일부이다. 가정은 사랑의 학교이며, 생명의 성소이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가정은 교회의 가장 작은 세포이며, ‘가정 교회’로서 신앙과 희망과 사랑의 공동체이다.”(2204항) 따라서 진정한 가정은 하느님께 열려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 기도와 말씀, 미사와 성사 생활을 통해 하느님과의 친교를 가꾸는 곳이 되어야 한다. 가정이 종교적 감각을 잃을 때, 인간적 사랑조차 쉽게 흔들린다. 나자렛 가정처럼,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6. 개방된 가정: 세상을 위한 사랑
세 번째로, 나자렛 성가정은 세상에 닫히지 않은 가정이었다. 그들은 세상과 타인을 위한 가정이었다. 예수님은 “나자렛 사람”(마태 2,23)으로 불리심으로써, 가난하고 평범한 모든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셨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주석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가난을 통해 하느님의 부요를 드러내셨다. 나자렛의 겸손 속에서, 하늘나라의 문이 열렸다.”(Homiliae in Evangelia, 8,3) 가정은 사랑 안에서 개방되어야 한다. 사랑이 닫히면,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이웃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사회 속에서 희망의 표징이 되어야 한다. 
 
7. 가정의 영성: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일치
바오로 사도는 콜로새서에서 이렇게 권고한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아버지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마십시오.”(콜로 3,18-21)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명령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질서”를 의미한다. 교리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을 드러내며, 부부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징이다.”(1617항) 그리스도와 일치된 가정은, 사회의 작은 교회로서 서로를 거룩하게 이끌어준다. 그 안에서 세대 간의 이해, 신뢰, 생명 존중이 자라난다. 
 
결론: 하느님의 축복 안에 세워진 가정
진정한 가정의 기적은 하느님 사랑의 축복 안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의 사랑은 약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새로워질 때 완전해진다. 성가정의 모범은 우리가 가정 안에서 사랑과 용서, 기도와 봉사를 배우도록 초대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성가정 축일 강론에서 이렇게 마무리했다. “성가정은 교회의 첫 학교이며, 인간이 사랑을 배우는 첫 자리다. 나자렛의 조용한 집에서 세상이 구원의 길을 배웠다.”(Homilia, 198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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