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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3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30 조회수 : 167

루카 2,36-40 
 
상처 난 굴이 진주를 품습니다 
 
 
찬미 예수님!
1013년 독일, 알츠하우젠 백작 가문에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축복이어야 할 탄생은 곧바로 가문의 비극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척추가 뒤틀린 꼽추였고, 입천장이 갈라진 구개열이었으며, 뇌성마비로 혼자서는 설 수도, 걷지도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헤르만 콘트랙투스(Hermannus Contractus)', 즉 '비틀린 헤르만'이라 부르며 혀를 찼습니다. 
 
7살 때, 그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라이헤나우 수도원에 맡겨집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유배'였지만,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초대'였습니다. 수도원의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헤르만은 매일 밤 자신의 몸에 갇힌 영혼의 비명과 싸워야 했습니다.
건강한 수도자들이 노동하고 찬미할 때, 그는 뒤틀린 손가락으로 간신히 펜을 잡거나,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더듬거리며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에게 육체는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자, 끊임없이 고통을 생산하는 고문 기계였습니다. 
 
어느 깊은 밤, 고통 때문에 잠들지 못한 헤르만은 십자가 곁에 있는 성모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 모든 이가 걷고 뛸 때, 평생을 누워있거나 기어 다녀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사무치게 서러웠을 것입니다.
"어머니, 저는 왜 이렇습니까?
왜 저를 이 고통의 감옥에 가두셨습니까?" 
 
그 절규의 끝에서, 헤르만은 기적처럼 성모님의 눈물을 마주합니다.
아들의 십자가 밑에서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겪으신 어머니, '비탄의 성모'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계셨습니다.
그 순간 헤르만은 깨닫습니다.
자신의 이 으스러진 육체야말로 세상의 위로가 틈탈 수 없는, 오직 하느님의 자비만이 채워질 수 있는 가장 거룩한 '빈방'임을 말입니다.
건강한 다리로 세상 쾌락을 좇아다니는 이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골방의 신비'가 그에게 열린 것입니다. 
 
그 밤, 그의 영혼에서 터져 나온 노래가 바로 우리가 즐겨 부르는 『살베 레지나(성모 찬송)』입니다.
"하와이 그 자손들이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슬픔의 골짜기에서, 탄식하며 우나이다." 
 
이 가사는 책상머리에서 나온 신학적 수사가 아니었습니다.
똥오줌을 받아내야 하는 자신의 비참한 침상,
그 '슬픔의 골짜기' 바닥에서 길어 올린 처절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저주하지 않고, 그 고통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빨아들이는 펌프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너그러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오!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님." 
 
그의 뒤틀린 입에서 나온 이 마지막 구절은, 육체의 감옥이 무너지고 천상의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환희의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추한 모습을 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상의 노래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의 상처가 입을 벌리자 그 틈으로 하느님이 들어오셨고, 그가 내뱉은 숨결은 교회의 영원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언자 안나의 삶도 헤르만과 다르지 않습니다.
안나는 결혼한 지 일곱 해 만에 남편을 잃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가장 큰 결핍이자 '상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안나가 만약 남편과 백년해로하며 부족함 없이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평범한 아낙네로 살았을 것이고, 성전에서 84년을 머무는 '사명'을 수행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결국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도 없었을 것입니다. 
 
안나에게 남편의 부재라는 텅 빈 공간은, 하느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성소가 되었습니다.
결핍이 곧 하느님이 들어오시는 통로였습니다. 
 
자연계에도 이와 똑같은 이치가 있습니다. 진주조개의 이야기입니다.
조개 속에 날카로운 모래알이라는 이물질이 들어오면 조개는 극심한 통증을 느낍니다.
매끈한 속살에 박힌 모래는 뱉어낼 수도 없는 고통입니다.
조개는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자신의 체액인 나전질을 분비해 모래를 감싸고 또 감쌉니다. 
 
오랜 시간 고통을 감싸 안은 결과, 그 거친 모래알은 영롱한 '진주'가 됩니다.
상처가 없었다면 진주라는 보석도 없었을 것입니다.
안나의 84년 기도는 상실이라는 모래알을 예수님이라는 진주로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일본에는 '킨츠기(Kintsugi)'라는 독특한 도자기 공예 기법이 있습니다.
아끼던 도자기가 깨졌을 때, 그것을 버리지 않고 깨진 틈을 옻으로 붙인 뒤 그 위에 금가루나 은가루를 입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깨진 상처(금)는 감추어야 할 흉터가 아니라, 도자기 전체를 가로지르는 황금빛 선이 되어 세상에 하나뿐인 독특한 무늬를 만들어냅니다.
그 그릇은 깨지기 전보다 더 비싸고 귀한 예술품으로 재탄생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깨진 마음을 버리시는 게 아니라, 그 틈새를 당신의 은총(금)으로 채워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으로 만드십니다.
상처 없는 매끈한 그릇보다, 은총으로 떼운 상처 입은 그릇이 하느님 보시기에 더 아름답습니다. 
 
성경의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평생 자신의 힘과 잔머리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야보크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다가 엉덩이뼈(환도뼈)가 위골됩니다.
이제 그는 도망칠 수도, 싸울 수도 없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만약 엉덩이뼈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야곱은 형 에사우 앞에 무릎 꿇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전히 교만이 자리 잡고 있어서, 자기 힘으로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 온전히 자신을
낮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다리를 절게 된 순간, 그는 비로소 제 힘으로 걷는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매달렸습니다.
"축복해 주지 않으시면 놓지 않겠습니다." 
육신의 힘이 꺾인 그 자리에 하느님의 권능이 들어왔고,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혹시 지금 감당하기 힘든 상실의 아픔이나 치유되지 않는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고 계십니까?
남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불행한 것 같아 하느님을 원망한 적은 없습니까?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부족함이 없는 이들은 주님을 간절히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것으로 배를 채우며 자신의 영혼을 더 병들게 할 뿐입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받아들이기에 가장 완전한 장소는, 바로 나의 상실의 공간과 상처입니다.
복자 헤르만처럼, 예언자 안나처럼, 그 상처의 빈방을 하느님께 내어드리십시오. 
 
여러분의 상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가장 따뜻하고 거룩한
구유가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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