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일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
루카 2, 16-21
세계 평화는 마음의 평화로부터
찬미 예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은 2026년의 첫날이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며, 교회는 이날을 '세계 평화의 날'로 지냅니다.
거창하게 세계 평화를 논하기 전에, 저는 오늘 한 사람을 살게 하는 힘, 그리고 그 힘이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제 어머니는 고아셨습니다.
키워준 가족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어머니를 식구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것이 얼마나 사무쳤던지, 어머니는 그들을 죽이고 당신도 죽으려 했다고 합니다.
바다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려던 그 절체절명의 순간, 어머니를 붙잡은 것은 누군가의 손길이 아니라, 당신 내면에서 솟아오른 한마디 외침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죽으면, 고작 물고기 밥밖에 안 되지 않는가?' 어머니는 자신이 고작 물고기 먹이나 되려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심어주신 '자존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을 꾸셨는데,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나병 환자촌으로 가시는 모습을 보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답니다.
'저 사람들도 사는데, 너는 왜 못 사니?
너는 저들보다 귀하다.'
그 꿈이 어머니의 자존감을 끌어올려 주셨고, 어머니는 죽음 대신 삶을 선택 하셨습니다.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돈도 명예도 아닌, 바로 '나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자존감입니다.
그런데 형제자매 여러분, 이 자존감은 혼자 힘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존감(Self-esteem)은 스스로 높이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존재로부터 인정받을 때 생겨나는 선물입니다.
만약 사랑받지 못하고 스스로 자존감을 찾으려 하면 어떤 비극이 일어날까요?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괴물의 절규가 그 답을 줍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피조물은 태어나자마자 흉측하다는 이유로 창조주에게 버림받습니다.
그는 숲속을 헤매며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돌팔매질뿐이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괴물은 결국 잔혹한 살인귀가 되어 창조주에게 따집니다.
"나는 뼛속까지 외롭다.
나의 창조주여, 나를 행복하게 해 달라.
나를 사랑해 달라.
그러면 나는 다시 온순해질 것이다." 괴물이 악해서 평화가 깨진 것이 아닙니다.
사랑받지 못해 자존감이 바닥난 존재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파괴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자존감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자존감이 아니라 '자존심' 혹은 '교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나르키소스를 보십시오.
그는 타인의 사랑을 거부하고 연못에 비친 자기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에만 도취되었습니다.
"나는 너무 완벽해." 하지만 그 끝은 무엇입니까?
그는 물속의 자신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습니다. 타인, 특히 하느님이라는 거울 없이 스스로 만든
자존감은 결국 자기 파괴로 끝납니다.
인간은 철저하게 '받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우크라이나의 '개 소녀' 옥사나 말라야의 실화는 이를 끔찍할 정도로 명확하게 증명합니다.
3살 때 알코올 중독 부모에게 버림받아 개집에서 5년 동안 개들과 함께 자란 소녀입니다.
발견 당시 그녀는 네 발로 뛰고 짖었으며 날고기를 먹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완벽한 인간이었지만, 자신을 '개'라고 여겼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나는 인간이다"라고 자존감을 세울 수 없습니다. 부모가 인간으로 대우해 주고 사랑해 줄 때만
인간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우리를 "너는 내 자녀다, 너는 신(神)을 닮았다"라고 대우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흙으로 돌아갈 본능만 가진 동물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 마리아가 위대한 이유는, 하느님이 주시는 이 엄청난 자존감을
온전히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와서 "너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감히 제가 어떻게..."라며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비천한 여종인 자신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신분
상승이었지만,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기에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며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참된 겸손이자 최고의 자존감입니다.
교회 역사 속에 '네스토리우스'라는 총대주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인간인 마리아가 하느님을 낳을 수 있느냐? 마리아는 그냥 인간 예수의 어머니일 뿐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얼핏 보면 인간의 분수를 지키는 겸손한 말 같지만, 교회는 그를 에페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주장은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다"는 인본주의적 교만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그 인간을 향해서도 당신보다 높여주려는 마음, 당신과 같아지게 하려는 마음이 없으시겠습니까?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놀라운 말씀을 남겼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이유는, 인간이 하느님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가톨릭 교리서 460항)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12)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 높은 자존감을 거부합니다. 마치 닭장에서 태어난 독수리 새끼가
"나는 하늘을 날 거야"라고 말하면, 닭들이 "감히 네가? 너는 닭이야! 주제를 알아라"며 쪼아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도 "너희는 신이다"라는 시편 말씀을 인용하시며 인간의 존엄을 선포하셨지만, 사람들은 "네가 감히 하느님과 같아지려 하느냐"며 그분을 신성모독으로 죽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세계 평화는 어디서 옵니까? 유엔의 회의장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려는 사람들, 즉 내가 내 힘으로 하느님처럼 높아지려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을 깎아내리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처럼 "하느님이 나를 당신의 어머니로, 당신의 자녀로 높여주셨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세상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이미 나는 하느님을 소유했기에, 땅의 것을 두고 다투지 않습니다.
오늘 1월 1일, 새해 첫날.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물고기 밥이나 짐승의 사료를 먹으며 낮은 자존감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처럼 하느님이 주시는 최상의 자존감을 입을 것인가.
"나는 하느님의 자녀다.
나는 하느님처럼 될 운명이다."
이 거룩한 자존감을 회복하십시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고 우리 가정과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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