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존재와 사명
요한 복음저자가 전하는 오늘 이야기는 공관복음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살림이나 애논 등 이 이야기에 표기되어 있는 지명들이 정확하게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를 알 수 없으나, 본문도 언급하고 있듯이, 요한이 세례를 주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감옥에 갇히기 전의 일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로써 세례자 요한은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주님 오심과, 나아가 주님이 세우실 하느님 나라 건설 준비에 끝까지 최선을 다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문제는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예수님의 세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데서 비롯됩니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분위기로 보아, 요한이 제자들에게 당신과 예수님의 관계에 대하여 분명한 어조로 정리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로의 쏠림 현상에 대하여 제자들이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요한의 제자들의 이러한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사명 수행 초기부터 제자들에게 둘러싸인 스승으로 등장하는(요한 1,35) 요한은 사람들이 메시아가 아닌지 자문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위대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루카 3,15). 제자들에게 단식과 기도를 가르쳤으며(마르 2,18; 루카 5,33; 11,1), 그의 힘찬 목소리는 전 유다 지방을, 특별히 당대의 지배 세력을 뒤흔들었습니다(마태 14,5; 마르 6,20; 루카 3,19). 요한은 회개하라고 외치며, 회개의 표시로서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라고 독려합니다(마르 1,4-5). 사람이 정의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자랑도 헛된 것이라고 소리 높이기까지 합니다(마태 3,8-9).
스승 요한의 권위에 찬 말씀과 몸짓에 탄복한 제자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오심과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는가 하면(사도 18,25; 19,2 참조), 이들과 초대교회 공동체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마르 2,18).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바로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었습니다. 앞서 여러 증언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오늘, 예수님의 명성과 쏠림에 이의를 제기한 제자들에게 요한은 자신을 ‘신랑의 친구’로 소개하며,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하는 존재’로 천명함과 아울러,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하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이 한 마디의 고백 속에 요한은 자신의 존재와 사명을 다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정의와 겸손의 인물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시고(내일 주님 세례 축일), 본격적인 복음전파 사명에 뛰어드십니다. 요한이 예고했던 대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서 죄인들을 멸망시킴으로써가 아니라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심으로써 구원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오늘 하루, 요한하면 떠오르는 정의의 목소리와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는 겸손의 자세로, 이웃에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이끄는 가운데, 가톨릭 신앙인의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를 드러내는, 귀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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