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2,13-17: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던 레위를 보시고 “나를 따라라”(14절) 하신다. 당시 세리는 로마 제국의 앞잡이로 여겨져 동족에게는 배신자로, 또 탐욕과 부정의 상징으로 비난받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눈에 죄인으로 낙인찍힌 바로 그 레위를 당신 제자로 부르셨다. 레위는 예수님의 한 말씀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단순한 발걸음이 아니라, 삶 전체를 그분께 일치시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눈에 보이는 발걸음이 아니라, 영혼의 결단이며, 옛 삶을 버리고 새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Hom. in Matth. 30,2) 레위가 새 이름 마태오(하느님의 선물)를 얻은 것은, 그가 단순히 직업을 바꾼 것이 아니라, 존재 전체가 은총 안에서 새로 태어났음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레위의 집에 들어가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자, 바리사이들은 분개하며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16절) 하고 묻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분의 사명을 이렇게 분명히 밝히신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17절) 여기서 문제는 죄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죄인이라 인정하지 않는 교만이다. 죄인은 고침을 받지만,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하는 이는 은총을 닫아버린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은 이미 의인이 되기 시작한다.”(In Iohannis Evangelium Tractatus 12,13)
우리는 누구도 완전한 의인이 아니다. 모두가 병든 자처럼 주님의 자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죄 속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의 은총으로 우리를 새롭게 빚어 주신다. 성 이레네오는 인간을 “하느님의 손에 있는 살아 있는 흙”이라 부르며, 하느님께서 마치 조각가처럼 우리를 형상화해 가신다고 말합니다.(Adversus Haereses IV,34,4) 예수님께서 레위를 바라보셨을 때, 탐욕에 찌든 세리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에 복음을 전할 사도의 가능성을 보신 것이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주님의 자비로운 의사 앞에 나아가는가? 혹시 나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며, 은총이 필요 없다는 듯이 교만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은 내 안에서 어떤 “투박한 돌”을 깎아 내고 계신가? 나는 기꺼이 그분께 나를 맡기고 있는가?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그리고 그 죄인을 제자로 삼으시고, 복음의 도구로 빚어내신다. 우리가 주님의 초대에 응답할 때, 투박한 돌 같은 우리의 인생은 성령의 은총으로 아름다운 작품으로 다듬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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