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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9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1-19 조회수 : 43

복음: 마르 2,18-22: “신랑을 빼앗길 날 단식하리라.”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철저히 지켰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예수님이 곁에 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신랑”에 비유하신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묘사했던 구약(호세 2,16; 이사 54,5)을 기억하게 한다. 신랑이 함께할 때는 잔치와 기쁨의 시간이지, 금욕의 시간이 아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는 잔치가 있고, 구원이 있으며, 기쁨이 있다. 그러나 그분이 떠나시면 단식과 눈물이 뒤따른다.”(Hom. in Matth. 30,3)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빼앗기셨다가” 부활로 다시 오신 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부활의 기쁨 속에 살지만, 동시에 재림을 기다리며 단식과 기도를 계속하는 나그네 공동체이다. 

 

예수님은 단식을 부정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단식의 참된 의미를 일깨우신다. 참된 단식은 단순히 음식을 거르는 것이 아니라, 악습과 죄를 끊는 것이다. 성 바실리오는 이렇게 권고한다. “진정한 단식은 음식만이 아니라, 분노에서 단식하고, 욕망에서 단식하고, 악행에서 단식하는 것이다.”(De Jejunio, Hom. 1,7) 교리서도 같은 맥락을 강조합니다. “회개와 단식은 내적 회개의 표현이며, 영혼의 강도를 높이는 수단이다.”(1434 참조) 따라서 우리가 단식할 때, 그것은 단순한 몸의 절제가 아니라, 죄를 끊고 주님을 향한 마음을 열기 위한 영적 행위가 된다. 

 

예수님은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21.22절) 하신다. 여기서 “헌 옷과 헌 부대”는 옛 생활방식, 자기중심적 태도, 율법주의적 사고를 상징한다. “새 포도주”는 예수님이 가져오신 복음과 은총, 곧 믿음·희망·사랑의 생명을 가리킨다. 성 이레네오는 이를 이렇게 풀이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롭게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옛사람의 옷을 벗어 던지고 새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한다.”(Adversus Haereses IV,36,5 참조) 복음은 단순히 우리의 옛 생활에 덧붙이는 장식이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묵은 나”를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은총”을 담아낼 수 없다. 

 

나는 단식을 단순히 음식 절제로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내 삶에서 끊어내야 할 ‘악습의 습관’은 무엇인가? 복음을 내 삶의 주변부에 덧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 부대로 살아가도록 주님께 나를 맡기고 있는가? 신랑이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며, 기쁨과 희망 안에서 단식을 살고 있는가? 

 

단식은 잃어버린 신랑을 애도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는 희망의 행위이다. 새 포도주인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묵은 나를 버리고 새로워지는 삶을 매일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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