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3,1-6
육체 치유에 앞서 마음부터 치유하신 예수님!
인간의 두 손은 수많은 신체 부위 가운데 정말이지 각별하고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인간의 활동은 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벽 알람이 울리면 손을 뻣어 스톱을 시킵니다.
손을 사용해 양치를 하고 이를 닦고 머리를 감습니다.
성당에 가서는 두 손으로 빵과 포도주를 축복하고 그 손으로 성체를 나누어줍니다.
식탁에 앉아서도 손으로 빵을 들고 잼을 바릅니다.
손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컴퓨터를 켭니다.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손으로 계좌 이체도 합니다.
따지고 보니 우리의 두 손이 하루 온 종일 어마어마한 일을 하고 있네요.
손이 없거나 오그라들었다면 얼마나 불편할 것인지, 얼마나 삶이 위축될 것인지요?
뿐만아니라 손은 인간관계 안에서도 아주 중요한 소통의 도구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사람들은 손으로 하트 표시를 만듭니다.
최고라는 표시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격려의 표시로 주먹을 움켜쥐고 파이팅을 외칩니다.
오랜만에 만나면 누구나 오른손을 내밀며 반갑게 악수를 나눕니다.
이런 면에서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너무나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은혜롭게도 오늘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무엇이든 곧게 만드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육체를 치유하기에 앞서 마음부터 치유하십니다.
손이 오그라들었다는 이유로 마음까지 오그라든 채 오랜 세월 위축된 삶을 살아온 그에게, 더이상 그렇게 외곽에서 살지 말고 중심으로 나오라 하십니다.
잔뜩 주눅들어 살지 말고 당당히 주도적인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그런 의도로 이렇게 외치신 것입니다.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손을 뻗어라.”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바리사이들은, 오늘은 안식일인데, 어찌 저자가 저리도 태연히 거룩한 안식일 법을 어기는거지? 하며 못 마땅해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뒷전이고 율법에만 혈안이 된 바리사이들의 모습에 심기가 불편해진 예수님께서 노기띤 얼굴로 강력한 경고장을 날리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는 손이 오그라들었지만, 그들은 정신이 오그라들었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치유 받았지만, 그들의 오그라든 마음은 치유 받지 못했습니다.”(아타나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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