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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2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1-22 조회수 : 56

복음: 마르 3,7-12: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이 그분께 나아와 손을 대려 밀려들었고,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고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11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졌다. 그러나 만진다고 해서 모두가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만졌다. 혈루증 여인이 그렇다. 그녀는 단지 옷자락을 만졌지만,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다(마르 5,27-34).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붙잡고, 결박하고, 매달았다. 역시 만졌지만, 그 만짐은 악의와 불신으로 가득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손으로 만진다고 그리스도를 잡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만져야 그분을 붙잡는다.”(In Iohannis Evangelium Tractatus, 26)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종교적 접촉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 그분을 만지는 것이다. 

 

복음에서 악마도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고백한다. 그러나 그 고백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지,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사랑으로 고백한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악마는 두려움으로 고백한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11절) 성 야고보 사도가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야고 2,19) 믿음이란 단순한 지식의 동의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성 바오로는 갈라티아서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사랑으로 활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갈라 5,6)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우리의 신앙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드러나야 하는 고백이다. 

 

예수님은 군중 속에서도 쉴 틈이 없으셨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 곧 사랑을 실현하는 사명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셨기 때문이다.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이다. 참된 신앙은 단순히 “주님, 주님” 하는 입술의 고백에서 그치지 않고, 삶 전체에서 사랑을 드러내야 한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삶에는 휴가가 없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의 신앙 고백은 악마의 두려움과 같은 고백이냐, 아니면 베드로처럼 사랑의 고백이냐?” 

 

예수님을 단순히 ‘만지는’ 신앙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 그분을 만지고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받고 있다. 우리 모두 날마다 그분을 진정한 주님,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고백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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