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셨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우리는 흔히 가족이나 친지들이 나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오히려 가까운 이들로부터 오해와 거절을 경험할 때가 많다. 예수님께서도 “그분이 미쳤다.”(21절)는 말을 들으셨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분조차 친척들과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셨다(마르 6,1-6; 요한 7,5 참조).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사건을 해석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멀리 있는 이방인들에게는 받아들여지셨으나, 가까운 이들에게는 거절당하셨다. 이는 빛이 어둠에 비추었으나, 어둠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1,9) 예수님은 진리를 선포하시지만, 오히려 친밀한 관계 속에서 더 깊은 오해와 거절을 당하신다. 이는 우리도 감수해야 할 십자가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서 “교회는 다툼이 아니라 친교와 화해의 집”임을 강조한다. 교회 공동체는 서로의 부족을 탓하기보다는, 약한 이에게 힘이 되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하느님의 가족이 되어야 한다.
성 바오로 사도도 “너희는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어 그리스도의 법을 완성하라.”(갈라 6,2)고 말한다. 우리의 신앙은 나 혼자의 완전함에 있지 않고,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 주는 상호보완적 사랑에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요구하십니다(마태 5,44). 이는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내 감정을 넘어 성령의 은총 안에서 모든 이를 하느님의 자녀로 존중하는 삶을 의미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큰 승리는 원수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다.”(Homiliae in Matthaeum 18,4)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공동체 안에서 다른 이의 부족함을 탓하기보다, 장점을 바라보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심하거나 상처를 주기보다, 참을성과 사랑으로 대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친척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삶에서 오해와 거절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참된 제자의 길을 배운다. 하느님의 가족인 교회 안에서 서로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기쁨을 함께 나누며, 사랑과 이해로 가득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자녀다운” 빛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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