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4,26-34: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사람은 모른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씨 뿌리는 이와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려주신다. 씨앗은 땅에 뿌려지면 농부가 자고 일어나는 동안, 즉, 그의 지식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스스로 싹이 트고 자라난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28절). 하느님 나라의 성장은 우리의 계산과 기술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선한 의지를 품고 말씀을 받아들일 때, 그 씨앗이 우리 안에서 자라지만, 그 성장을 우리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우리 안에서 시작되는 믿음은 하느님이 뿌려주신 씨앗이다. 그것이 자라나 열매를 맺게 하는 것도 하느님이다.”(Enchiridion 32)라고 말했다. 인간의 협력은 필요하지만, 그 성장은 은총의 비밀스러운 작용 안에서 이루어진다.
겨자씨의 비유는 더욱 분명하다. 가장 작은 씨앗이지만,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커다란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인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교회에 비유하며, “작은 무리로 시작된 교회가 지금은 온 세상을 뒤덮는 나무가 되었다.”(Hom. in Matth. 46,2)고 설명한다. 실제로 교회는 갈릴래아의 작은 씨앗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모든 민족을 품는 하느님 나라의 표지가 되었다. 교회의 존재 자체가 그 나라의 씨앗이요 시작이다. 씨앗이 자라려면 농부가 뿌려야 하고, 동시에 땅과 햇볕과 비가 필요하듯이,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응답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안에는 어떤 씨앗이 자라고 있느냐?” 우리가 말씀을 받아들였다면, 그 말씀은 이미 우리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 하지만 그 성장을 당장 눈에 보지 못한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씨앗은 땅 속에서 보이지 않게 자라다가 때가 되면 싹을 틔우듯이, 은총은 보이지 않게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또한 우리는 내 안의 밭을 돌보아야 합니다. 씨앗이 자라도록 가시덤불을 제거하고, 말씀을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느님 나라의 성장은 우리의 손으로 강제로 만들 수는 없지만, 우리가 협력할 수는 있다. 그 협력이 바로 기도, 말씀의 묵상, 사랑의 실천이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처럼 작게 시작되지만,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큰 나무가 된다. 그 나무는 곧 교회이며, 우리 신앙인의 삶이다. 오늘 우리는 내 안에 뿌려진 씨앗을 돌보며, 하느님 나라의 성장에 협력해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처럼 “우리가 뿌리고 물을 줄 수는 있으나, 성장하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De catechizandis rudibus 4,8).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은총 안에서 신뢰하며, 씨앗이 자라 열매 맺을 날을 기다리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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