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2,22-40: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봉헌 축일(Presentatio Domini)을 기념한다. 이는 율법에 따라 맏배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행위이자, 동정 마리아께서 정결례를 지키시며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축일은 단순한 의무 이행이 아니라, 하느님께 모든 것을 봉헌하는 삶의 의미를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
1. 봉헌의 의미
율법에 따라 “태를 열고 나온 첫 아들은 모두 주님께 봉헌되어야 한다.”(루카 2,23; 탈출 13,2 참조) 하였다. 이는 모든 생명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행위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를 두고 이렇게 설명한다. “봉헌은 단순히 의무적 제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다시 그분께 돌려드리는 전적인 응답이다.”(Redemptionis Donum, 1984) 곧, 우리의 작은 기쁨, 고통, 희생까지도 하느님께 바칠 때 그것은 단순히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은총과 기쁨으로 변화된다.
2. 시메온의 고백 – 구원의 빛
성전에서 의인 시메온은 성령의 인도로 아기 예수를 알아본다. 그는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30절)라고 찬미한다. 성 이레네오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시메온은 눈으로 아기를 보았으나, 그 아기 안에서 영원하신 하느님의 구원을 인식하였다.”(Adversus Haereses III,10,2) 그가 바라본 것은 단순한 유다의 위로가 아니라, 온 세상의 빛, 그리스도였다. “이방인들을 비추는 빛,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32절)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보편적 구원을 선포하는 선언이었다.
3. 반대를 받는 표징 – 십자가의 신비
시메온은 예언한다. “이 아기는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다.”(34절) 성 치프리아노는 이 말씀을 해설하며 말한다. “그리스도의 표징은 사랑의 표징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미움을 불러일으키는 표징이다. 이는 십자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Epistula ad Donatum 6) 십자가는 믿는 자에게는 구원과 영광이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걸림돌이 된다(1코린 1,23 참조). 따라서 봉헌의 삶은 고통과 대립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길이다.
4. 성모 마리아의 고통과 신앙
시메온은 마리아께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입니다.”(35절)라고 예언한다. 교회는 이를 통해 성모님의 동반 고통과 구속 신비 안에서의 협력을 묵상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렇게 가르친다. “마리아께서는 구세주의 수난과 죽음에 깊이 일치하시며, 독특한 방식으로 구원의 신비에 협력하셨다.”(교회 58) 이로써 마리아는 단순히 아들을 봉헌한 어머니가 아니라, 교회와 인류를 위하여 자신을 봉헌한 신앙의 모범이 된다.
5. 한나의 증언 – 기도의 삶
예언자 한나는 성전에서 봉헌되는 아기를 알아보고 기뻐하며 다른 이들에게 그분을 증언한다. 그녀의 일생은 기도와 봉사로 가득 차 있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기도의 삶을 두고 이렇게 강조한다. “하느님께 봉헌된 영혼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 늘 기도로 그분과 결합되어 있다.”(Homiliae de Anna 3) 이는 나이와 환경에 상관없이, 모든 신자가 주님을 기다리고 만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친다.
결론 – 우리의 봉헌
주님 봉헌 축일은 단순히 과거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어져야 할 소명을 일깨운다. 우리는 시메온처럼 성령 안에서 주님을 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 우리는 한나처럼 기도와 봉사의 삶으로 구세주를 증언해야 한다.
교리서는 이렇게 정리한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아버지께 대한 봉헌이다. 이 봉헌 안에서 모든 신자는 자기 자신을 봉헌하도록 부름을 받는다.”(529항) 오늘 아기 예수께서 성전에 봉헌되신 이 거룩한 신비 안에서, 우리도 우리의 삶 전체를 하느님께 봉헌하며 살도록 초대받고 있다. 감사와 봉헌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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