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6,14-29: “세례자 요한의 죽음”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전해준다. 예언자의 삶은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삶이었고, 동시에 세상의 권력과 죄악 앞에서 고통과 박해를 감수해야 하는 삶이었다. 헤로데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자마자 불안에 사로잡혔다. “내가 목을 벤 요한이 되살아났구나.”(16절) 이는 그의 내면에 깊은 죄책감이 남아 있음을 드러낸다. 인간은 죄를 지을 때는 순간적으로 쾌락과 안락을 좇지만, 그 뒤에는 양심의 칼날이 남아 늘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죄인은 어디서든,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In Psalmum 140, 14). 죄를 덮으려 할수록, 오히려 그것은 더욱 자신을 붙잡고 파괴하게 된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의 잘못을 두려움 없이 지적했다.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18절) 예언자는 권력자에게 아첨하거나 침묵하지 않고, 하느님의 진리를 선포한다. 그러나 진리의 대가로 요한은 목숨을 내어주었다. 교회는 늘 이러한 예언자적 증언 위에 살아왔다. 교리서는 말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진리와 선을 증언해야 하며, 이를 위해 박해를 당할 수도 있다.”(교리서 2471항).
헤로데의 약점은 권력이 아니라 욕정과 허영이었다. 그는 춤추는 소녀 앞에서 경솔한 맹세를 하고, 결국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세례자 요한의 목숨을 빼앗는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헤로데는 다른 이들을 다스릴 권세를 가졌으나, 자기 욕망 하나 다스리지 못했다.”(Hom. in Matth. 48,3).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기 체면을 지키려는 마음은 언제나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넘어뜨린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나는 혹시 헤로데처럼 죄를 덮고 합리화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요한 세례자처럼 불의와 죄 앞에 예언자적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예언자의 삶은 단지 설교하는 사람의 몫이 아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우리가 모두 진리의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 작은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거짓보다 진실을 선택하며, 두려움보다 믿음을 선택할 때, 우리는 요한 세례자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요한 세례자는 목숨을 잃었지만, 그의 진리 목소리는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복음을 준비하는 마지막 예언자로서, 그는 우리에게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증인으로 남아 있다. 우리도 오늘의 세상 속에서 진리를 증거하는 작은 예언자가 되도록 기도하자. 주님께서 우리의 두려움을 잠재우시고, 우리 안에 성령의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시기를 청하여야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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