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과 빛
[말씀]
■ 제1독서(이사 58,7-10)
바빌론 유배시기 동안 익명의 예언자 제2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을 가져다줄 메시아를 예고합니다. 이 메시아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속죄의 길을 걸어갈 것이나, 아울러 이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봉사 정신을 나누어 가질 것을 촉구합니다. 봉사의 삶을 살 때,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맡기신 사명에 제대로 답할 수 있고, 이로써 민족들의 빛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제2독서(1코린 2,1-5)
그리스의 중심 도시 아테네에서 철학자들과 토론할 때, 사도 바오로는 그들의 수준에서 논쟁을 벌였으나 그리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바오로는 인간의 지성과 지혜의 한계를 절감하고서 이제 십자가에 대해서만 말하기 시작합니다. 십자가의 신비를 밝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약했던, 두려움에 떨었던 자신이 선교활동에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힘에 의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 복음(마태 5,13-16)
마태오는 오늘 말씀에 앞서 (지난 주일 복음에서) ‘하늘나라의 헌장’이라 할 수 있는 ‘참 행복의 길’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이 나라를 올바로 증언하는 데 관한 헌장이 발표됩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증인은 자기의 삶을 통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것을 보게 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이 증언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별 영향력이 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결국 그 진실성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새김]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세례성사와 함께 복음 전파 사명을 부여받으며, 이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선교 사명이란 것이 교회의 기존 제도를 알리는 데 급급하거나, 신자로서 지켜야 할 규정을 강조하는 데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할 경우 아무리 교회의 이름으로 포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명은 매우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도나 규정은 그 다음의 문제, 곧 각론(各論)은 될 수 있어도, 총론(總論)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먼저일까요?
그 답을 오늘 주님의 말씀 속에서 찾습니다. 주님은 마치 ‘우리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응답하시듯, 신앙인으로서의 우리의 신원을 분명하게 밝혀주십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금과 빛은 공통으로 ‘봉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거나 썩는 것을 막아 주며, 빛은 어둠을 거둬내 길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소금과 빛이 되어 살맛을 잃어가는 세상에 생기를 북돋워 주고, 길을 잃고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게,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제2독서)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잡이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헐벗고 “굶주린 이들”,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준다면 “우리의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우리에게는 대낮처럼 될 것입니다”(제1독서).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 가운데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주제는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이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명료하게 다가오는 가르침 가운데 하나입니다. 부패를 막아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소금과, 세상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밝혀 누구나 밝은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만드는 빛으로서의 삶이야말로,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제대로 따라 사는 섬김의 삶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역할 수행에 모자람이 없도록 조금 더 기도하고 조금 더 희생하는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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