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간 화요일
“마음이 없으면”
예루살렘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감찰단이라고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자신들의 전통에 근거하여 어긋나는 것을 꼬투리로 잡아 예수님의 활동을 멈추게 할 목적으로 온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의 그 어떤 가르침과 행적에 대하여도 이미 모두 닫혀 있었습니다. 마음이 닫혀 있고 마음이 멀리 떨어진 사람! 그 사람 마음에 무엇이 들어올 수 있겠고 우리가 무엇을 담아 줄 수 있겠습니까? 이미 ‘틀렸어! 안 된다!’는 결론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 어떤 긍정적 수용과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몸은 마주하고 있지만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데 무슨 소리인들 관심 갖고 들을 수 있겠습니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어쩌다 그런 완고함을 지니게 되었을까요? 하느님의 계명인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장 오늘 복음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규정도 그렇습니다. 유다인들이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이유는 모든 양식은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서, 그 선물을 받아먹기 위해서는 음식을 집는 손 역시도 정결해야 한다는 데서 온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 감사, 기쁨’은 오간데 없고 씻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전통과 규범만 남은 것입니다. 이밖에도 레위기 11장부터 15장까지는 거룩함과 정결함을 위한 세세한 법이 제시되고 있는데, 그 근본은 거룩하신 하느님 사랑으로 창조된 모든 만물에 대한 존귀함과 그에 상응한 인간의 응답과 삶의 태도에 관한 법입니다.
마음으로부터 사랑하면 힘든 일도 견디어 냅니다. 마음에서 사랑하면 일이 번거로워도 그 예를 갖춥니다. 마음속에 사랑을 담게 되면 더 큰 진실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말과 행동이 요란한 징이나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1코린 13,1-7)”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갈등을 겪고 서로 반대하고 비난하며 편견을 갖고 힘들어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진정 일 때문입니까? 진정 그 사람이 무식하고 무능력해서입니까? 사랑을 품을 마음이 닫혀 있거나 그 마음이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반대하고 싸우더라도 서로 세워주고 완성하기 위한 반대와 싸움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건전한 다툼입니다. 함께 무너트리고 짓밟기 위한 것은 짐승이나 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필리 2,3)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다투어 서로 남을 존경하는 일에 뒤지지 마십시오.(로마 12,10)” 입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랑으로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친히 성령 안에서 축복하여 완성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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