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토요일 부활 성야미사
(마르 16,1-7; 로마 6,3-11)
제가 사제가 되어서 첫 본당에 갔는데, 부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그 속에 『누군가와 함께 라면』이라는 글이 있었는데, 저는 이 글을 혼인예식 강론 때 신랑 신부에게 많이 읽어 줍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들어 볼까요.
『갈 길이 아무리 멀어도 갈 수 있습니다.
눈이 오고 바람 불고 날이 어두워도 갈 수 있습니다.
바람 부는 들판도 지날 수 있고 위험한 강도 건널 수 있으며 높은 산도 넘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라면 갈 수 있습니다.
나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와 함께 라면...
손 내밀어 건져주고, 몸으로 막아주고, 마음으로 사랑하면 나의 갈 길 끝까지 잘 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혼자 살기에는 너무나 힘든 곳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단 한 사람의 손이라도 잡아야 합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믿어야 하며 단 한 사람에게라도 나의 모든 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동행의 기쁨이 있습니다.
동행의 위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동행에 감사하면서 눈을 감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험난한 인생길 누군가와 손잡고 걸어갑시다.
우리의 위험한 날들도 서로 손잡고 건너갑시다.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따뜻해집니다.』
부제님, 부제님이 신랑이라고 생각하고 답을 해보세요.
그러면 여기서 누군가는 누구일까요?
부제님, 부제님은 신부라고 생각하고 답을 해보세요.
여기서 누군가는 누구일까요?
혼인 당사자인 신랑 신부는 대부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정답으로 옆에 있는 배우자를 말합니다.
마땅하고 옳은 대답이긴 하지만, 저는 여기서 말하는 누군가는 “주님”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싶다면 주님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부활 성야를 지내고 있는 우리가 함께 이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왜 부활하셨을까?’
그 전에 이것부터 생각해야겠군요.
‘예수님은 왜 돌아가셨는가?’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이지요.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지요.
그러면 예수님은 왜 되살아나셨는가?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이지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우리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이런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어린이미사 성가가 하나 있는데 여러분과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
제목은 <예수님 때문에>입니다.
...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다시 우리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고, 감사할 줄도 알고, 용서를 하고, 기뻐하는, 기꺼이 희생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리저리 영향을 받는 우리의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우리의 삶은 행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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