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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5일 연중 제10주일: 나도 생명을 줄 수 있을까?

작성자 : 최규화 작성일 : 2016-06-05 조회수 : 259

6월 5일 연중 제10주일

(루카 7,11-17; 1열왕 17,17-24; 갈라 1,11-19)

찬미 예수님!

오늘 1독서와 복음에서는 과부의 죽었던 아들을 살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아이 위로 세 번 자기 몸을 펼친 다음 주님께 ‘아이 안으로 목숨이 돌아오게 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 아이 안으로 목숨이 돌아오게 하시고, 아이는 다시 살아나지요.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그냥 “젊은이야, 일어나라.” 하고 말씀만 하시지요.

두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목숨은, 생명은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지요.

생명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첫째는 ‘주님께서는 나도 죽음에서 구해 주시는가? 나에게도 생명을 주시는가?’

둘째는 ‘나도 죽은 이에게 생명을 줄 수 있나? 나도 그럴 수 있다면 너무도 좋을텐데...’ 라는 생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젊은이를 죽음에서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생명이신 주님께서 생명을 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두 번째 독서인 갈라티아서의 말씀을 보지요.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없애버리려고 했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유다교를 신봉하면서 어느 누구보다도 열성적이었는데, 하느님께서 자신을 따로 뽑으시어 그분을, 당신의 아드님을 자신 안에 계시해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 안에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셨던 분은 주님이시고, 주님은 바로 당신 자신을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생명을 건네십니다.

우리 안에 당신을 끊임없이 주시지요.

성체성사를 통해서도 오시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 안에서 계속해서 당신 자신을 열어 보여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도 죽은 이에게 생명을 줄 수 있나요?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 안에 하느님의 아드님을 계시해 주신 이유를 하느님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도 생명이신 주님을 모시고 생명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지요.

우리도 생명이신 분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 줌으로써 모든 이들이 생명을 살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일을 하도록 하느님께서 자신을 어머니 태중에서 이미 뽑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간절히 생명을 나누고 싶으신 것이지요.

 

어느 날 한 신자분이 시아버님의 병자성사를 청하셨습니다.

그런데 조금 난감한 것이 시아버님이 우리 본당 신자분이 아니셨어요.

하도 간곡히 부탁을 해서 약속한 날에 준비를 하고 갔는데, 갔더니 이미 본당 신부님이 병자성사를 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하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봉사자분이 그러시더라구요.

“신부님, 여기 오랫동안 냉담하신 분이 계시는데, 곧 임종하실 것 같습니다. 그분의 친척분이 병자성사를 원하시는데 어떻게 하지요?”

순간 저는 제가 그곳에 왜 왔는지, 하느님께서 저를 왜 움직이셨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오랜 냉담자분께 병자성사를 드리라고 저를 부르신 것이었죠.

냉담하신 분이 하느님을 잊고 살았는지는 몰라도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잊지 못하셨던 거지요.

그래서 묘한 방법으로 여러 사람을 움직여서 그분을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당신 생명에로 초대하셨던 것입니다.

생명이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찾아오셨음을 깨닫고 생명이신 주님을 나누며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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