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마태 10,24-33; 이사 6,1-8)
찬미 예수님!
이런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 누가 있습니까?’
보좌 신부 1년차 때 주임신부님과 함께 미사를 하는데 제가 강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신 주임신부님께서 좀 엄하셨습니다.
강론을 하면서 제 솔직한 속마음을 말씀드렸지요.
“여러분, 우리 성당에서 제일 높은 분이 누구이십니까?”
신자분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느님이요.”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높으시지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미사를 하면서 하느님께 마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제 옆에 있는 주임신부님께 마음이 쓰여서 하느님께 정말 죄송스럽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신자분들이 상당히 걱정했다고들 합니다.
주임신부님께서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사 중에도 혼내시는 그런 분이셨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 일도 없이 그냥 미사가 계속 되었고 끝났습니다.
그리고 제의방에서 신부님께서 제게 그러시더라구요.
“최신부, 그렇게 힘들었어.”
그리고는 그냥 나가셔서 독서대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보좌 신부님이 아직 훈련이 덜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저하고 미사를 함께 할 때는 보좌신부님이 다 강론할 겁니다.”
그 이후로 신부님과 미사할 때는 제가 미사 주례와 강론을 다 했지요.
아무튼 우리가 누구를, 무엇을 마음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행동이 다를 것입니다.
우리가 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행동은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건강이나 취미,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을 중심으로,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가족 중심으로, 하느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하느님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것과 저것을 선택해야 할 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그것이 우리의 삶 안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것이지요.
나에게 정말 하느님이 중요하다면 나는 정말 나 자신을 생각하기 보다는 먼저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일, 하느님께서 내게 바라시는 일을 하려고 할 겁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요청하시기 전에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며 이사야 예언자처럼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 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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