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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9일 월요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왜 이 허망한 죽음을 기념하지?

작성자 : 최규화 작성일 : 2016-08-29 조회수 : 335

829일 월요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마르 6,17-29; 예레 1,17-19)

찬미 예수님!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더니 형제들이 저에게 오늘 쟁반을 조심하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세례자 요한인데, 세례자 요한의 머리가 쟁반에 담겨졌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참으로 허망하게 다가오늘 것을 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라는 사명을 받고 광야에서 메뚜기와 벌꿀을 먹으면서 고생고생하며 온 마음을 다했는데, 그토록 충실하게 산 사람의 최후가 이런 것이라니 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은 뭐하셨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지요.

하느님은 세례자 요한이 사람들의 손에 그렇게 허망하게 목숨을 잃을 때 무엇을 하셨을까요?

또 하나 떠오르는 의문은 교회는 이 허망해 보이는 죽음을 왜 기념하기까지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신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실 것인가 하는 그분의 수난에 대해서도 예고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거꾸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비추어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대해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 갇힌 것은 그가 어떤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진리를 말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그는 그냥 풀려나지 못하고 계속 감옥에 있어야 했습니다.

감옥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저는 세례자 요한이 어떻게 하면 감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그 방도를 궁리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직 자신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음을, 아직 자신에게 커다란 사명이 남아있음을 예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 하느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전하고 싶으신 것, 예언하고 싶으신 것, 그것이 이루어지길 기다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시간이 예언자에게도 쉽지는 않았겠지요.

이 고통스럽고 어찌할 수 없는 시간, 자신의 한계가 드러나고 마치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 것 같고 악이 판을 치는 이 시간에 세례자 요한은 지금까지 자신이 바쳤던 믿음보다 더 순수하고 가장 확고한 믿음을 바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 부조리한 시간에 하느님은 무얼 하셨을까요?

세례자 요한은 바로 이 시간에 하느님께서 자신과 함께, 자신 안에서 고난을 받아 주심을 믿었을 것입니다.

오늘 교회는 우리의 극도의 어려움에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정말 조용히 함께 고통을 받으시는, 우리 안에서 몸소 고통 받으시는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며 우리를 이리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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