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1주간 목요일(가해)
오늘 어제에 이어 마태오 6장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의 복음은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주님의 기도 부분입니다.
잠시 어제 복음이 무엇입니까?
자선과 기도 단식에 대한 가르침인데, 오늘 들은 주님의 기도와 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 기도와 상관관계가 무엇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어제 들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도하지 마라는 금지형의 가르침이라면 이제 뭐가 나와야 하나요? 이렇게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이제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나와야겠지요. 마태오 복음은 그러한 순서를 통해 아름답게 구성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루에 이 기도를 미사 때 한 번, 아침과 저녁기도에 한 번씩 해서 공동체 기도로 세 번씩을 오랫동안 바쳐왔고, 이 기도는 그 어떤 기도보다도 으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가 다른 기도보다도 으뜸인 이유는 금방 들은 마태오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루가 복음 11, 1절 이하를 보면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한 대목이 있는데, 으뜸인 이유가 바로 제자들이 직접 가르쳐 주십사고 청원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에는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상관관계를 단순하면서도 친밀하게 보여줍니다. 성부 아버지와 성자 그리스도의 관계처럼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관계, 그리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면서 부자관계가 형성되니,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 깊은 기도입니까!
주님의 기도 첫 구절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이 됩니다. 하늘에 계신 너네 아버지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그 기도구절만 보더라도 모든 기도의 으뜸이라고 주저없이 말할 수가 있습니다.
예화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 어느 정도 교리를 이해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찰고라는 게 있습니다. 어떤 할머니께서 세례를 받으려고 열심히 교리에 나갔지만 할머니에게는 걱정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찰고를 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습니다. 더욱이 본당 신부님께서는 주요 기도문을 세례 받기 전까지 꼭 외워야 하며, 외우지 못하는 사람은 세례를 받을 수가 없다고 단언하시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거였습니다.
분명히 찰고 때, 신부님께서 ‘주님의 기도문을 외워보세요’라고 물으실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할머니는 한참을 고민하다 며느리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니? 그러자 며느리는 어머님, 연세가 있으시니 외우시기가 어려우실텐데 한 번만 봐달라고 해보세요. 그리고 교리도 안 빠지고 열심히 다녔다는 것을 강조하세요. 라고 귀띔을 해 드렸습니다.
용기를 갖고 할머니는 본당 신부님과 찰고를 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한 대로 신부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외워보라는 거였습니다. 그러자 갖가지 미소를 총동원하면서 할머니는 ‘나이가 많아 도저히 외워지지 않고 교리시간에 한번도 빠지지 않았으니 그냥 세례를 주세요.’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본당신부님께서는 웃으시면서 할머니 제가 언제 주님의 기도문을 암송하라고 했습니까. 저는 그저 할머니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만 드렸을 뿐인걸요. 할머니는 주님의 기도를 외우는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신부님의 얘기가 무엇인지 잘 듣지 않고 다짜고짜 외우기 시작하였던 거였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고 으뜸인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아울러 이 기도는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는 기도인데, 그 기도의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게 아니라 정말 아들이 아버지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그런 기도를 바칠 때마다 하느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바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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