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2주간 금요일(나해)
오늘 복음은 그 유명한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이야기입니다. 그 줄거리를 뽑아보면 이렇습니다.
①어떤 지주가 포도원에 포도나무를 심고 그것을 농부에게 도조로 내어 주고 떠났습니다.
② 포도철에 그 지주는 종을 소작인들에게 파견하여 농부들에게서 포도원의 소출을 받도록 했습니다.
③ 그런데 소작인들은 파견된 종을 때리고 빈손으로 보냈습니다.
④ 그러자 지주는 다신 다른 종을 그들에게 파견하였으나, 소작인들은 그마저 머리를 치며 모욕하였습니다.
⑤ 마지막으로 지주는 자기 아들을 소작인들에게 파견하면서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하며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⑥ 하지만 소작인들은 ‘이 자가 상속자다. 가서 그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상속을 우리 것이 될 것이다’ 하고 서로 짜서, 그 아들을 잡아 죽이고 포도원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⑦ 그러니 포도원 주인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주인은 가서 농부들을 없애고 다른 이에게 포도원을 줄 것입니다.
지주는 자신의 포도밭을 가꾼 후 그 포도밭을 도조로 줍니다. 그런데 당연히 받아야 할 도조를 소작인들에게 착복 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주는 심부름꾼들을 보내며 결정적으로 자신의 아들까지 보내며, 소작인들을 끝까지 믿습니다.
자기 아들도 사지로 보내는 순박한 지주의 모습은 참아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소작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포도밭을 임시로 맡아 관리하는 소작인들은 주인의 포도밭을 자신의 포도밭인 양 모든 소출을 자기 것으로 합니다. 간이 점점 커져 도조를 받으러 오는 종을 때리고 모욕을 줍니다. 이제 간이 배밖에 나와 지주의 상속자를 죽입니다. 점점 악해져서 멸망의 길로 가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말하셨을 때, 예언자들의 운명을 마음에 두셨을 것입니다. 하느님 창조 질서로 돌아오라는 예언자들의 말을 아니꼽게 들은 이스라엘은 예언자들을 하나같이 가만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모두다 손대어, 명대로 죽은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모욕하고 더러는 죽이고 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예수께서 이 이야기를 발설하셨을 때는 자신의 운명을 어느 정도 직감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뒤로 물러나지 않으십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는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 앞에서 이 말씀을 하셨으니, 자기 아들을 사지로 보내는 지주 마냥 예수님도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만용을 부리다 죽은 어리석은 사람의 객기라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남아 우리들에게 새로운 빛을 주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도조를 잘 내는 새로운 소작인 때문일 겁니다. 이 새로운 소작인은 하느님의 심부름꾼인 예언자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서로 음모를 짜서 예언자들을 없애버리지 않습니다. 인류가 예언자도 죽이고 아들까지 죽이는 죄악 속에 파묻혀 있더라도, 하느님의 구원은 끊임없이 계속됨을 오늘 복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새로운 소작인으로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참여하는 일은 놀랍고도 위대한 일일 것입니다. 새로운 소작인들이 할 일은 간단합니다. 하느님의 심부름꾼을 모욕주거나 때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부름꾼은 누구이겠습니까?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일 것이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일일 것입니다. 죄악 속에 버려져 있고, 죽음이 언제 덮칠지 모르는 우리이지만, 이런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뽑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시편 말씀이 우리를 향한 하느님 축복의 말씀이니 한 번 더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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