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직장에서 회식이 있을 때마다 너무나 힘든 것입니다. 술 못 마시는 자기 때문에 분위기가 깨지는 것만 같고, 그렇다고 술을 마시면 며칠 동안 힘든 시간을 이겨야만 했지요. 이렇게 술 마시는 것을 힘들어하는 형제님께 동기가 이런 말을 합니다.
“술은 정신력이야. 정신력만 강하면 얼마든지 술을 마실 수가 있다고.”
이 말을 들은 형제님께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가 지금 급해서 그런데, 혹시 컴퓨터 프로그램 짤 수 있어?”라고 묻습니다. “무슨 말이야? 나는 경영학과 출신이라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운 적이 없어.”라고 친구는 대답했지요. 그러자 곧바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컴퓨터 프로그램 짜는 것도 정신력이야. 정신력만 강하면 얼마든지 프로그램을 짤 수 있다고.”
친구는 당황해하면서 “컴퓨터 프로그램과 정신력이 무슨 상관이야? 말도 안 되는 말 하지 마.”라면서 화를 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이 형제님께서는 “맞아. 말도 안 되지? 내게 술은 정신력으로도 안 되는 거야.”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정신력 탓을 자주 하지만 반드시 정신력 탓만 아닐 때도 많습니다. 분명히 안 되는 것도 있기 때문이지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떤 사람도 다 이해하고 인정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이해하고 인정할 수 없는 이유를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안에서 소외가 일어나고, 아픔과 상처 안에서 더 큰 거리감에서 따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안 좋게 보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능력 있고 재주 많은 사람을 뽑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을 뽑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부족함만 가득 보이는 사람들을 제자로 뽑자 사람들은 제자를 잘못 뽑았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이지요.
바로 한 부분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기준만을 앞세워서 남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준은 분명히 달랐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새 계명을 들고 오신 주님과 함께 무조건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판단과 단죄를 반복하며 사는 우리입니다. 그보다는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사랑의 주님도 함께 하십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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