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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6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7-16 조회수 : 293

‘싫다’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좋다’입니다. ‘틀리다’의 반대말은 ‘맞다’입니다. 마지막으로 ‘다르다’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같다’입니다. 이렇게 ‘싫다, 틀리다, 다르다’는 분명히 모두 다른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다른 것을 싫어하고, 싫어하는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면서 싫다, 틀리다, 다르다를 종종 한 덩어리로 묶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또 함께 하는데 힘든 상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세상 안에서의 모든 다툼과 분열은 바로 이러한 잘못된 이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게 보지 않는다고 해서 틀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것이 싫은 이유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단지 나와 다를 뿐인 것입니다. 혈육이라고 말하는 가족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 가족이 무조건 틀린 것일까요? 자신을 응원하거나 지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족도 아니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역시 가족 구성원들과 나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 다름을 틀린 것과 싫은 것의 동의어로 생각하면서 함께 할 수도 또 일치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내 자신의 속 좁음이 결국 세상의 불일치를 가져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늘 스스로 지금 내 자신의 판단을 하나하나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이웃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비로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옛날의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그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자기들과 다른 것을 ‘틀렸다’라고 하고, 그 다른 것을 ‘싫다’라면서 거부했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예수님의 뜻과 일치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시지요. 바로 이웃을 향한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하는 사람이 주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작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죽음에서 구해내고,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행동을 해야지만 사랑을 실천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싫음과 틀림을 잘 구별하면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야지만 내 이웃을 받아들일 수가 있고, 이 모습의 결과는 곧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을 향한 내 마음이 주님을 향한 내 마음과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내 이웃을 이해하기 위한 나의 노력은 과연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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