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에 한 친구가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학교에서 공부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중이 잘 되는 독서실에 가겠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의 거절 사유는 이러했습니다.
“너는 집중 잘 된다고 독서실에서 시험 볼 거야?”
사실 공부할 때보다 더 집중해야 할 시간은 시험 볼 때입니다. 따라서 집중 잘 되는 곳을 찾는다면 독서실에서 시험을 봐야하겠지요. 그러나 그곳에서는 시험을 볼 수 없습니다.
공부의 조건이 까다로운 사람은 성적도 그렇게 좋지 않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원인을 주변에서만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끄러워서 공부를 못하겠다, 주변이 산만해서 못하겠다, 유혹거리가 많아서 못하겠다, 부모의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 등등의 말을 하면서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데 주변이 도와주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을 하고 있지요. 그러나 문제의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습니다. 집중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원인이 있음을 깨닫고,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비슷합니다. 어떤 분들은 너무나 민감합니다. 미사 중에 누가 조금만 떠들어도 참지를 못하고 화를 내며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면 그 당사자가 마치 커다란 죄를 지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시끄러우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을까요? 사제의 경문 읽는 소리만 나야지만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의 기도를 들으실까요?
주님께서는 어디에나 가셨습니다. 사람들이 가득한 장터에 가서도 당신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이는 어디에나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을 침묵 안에서만 계시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물론 침묵 안에서 주님을 찾기가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집중할 수 있다면 시끄럽고 산만한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주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감사기도를 바치십니다. 바로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아닌 오히려 부족함 그 자체인 철부지 같은 제자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신비가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따르려는 철부지 같은 모습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우는 자신의 판단으로 주님의 활동을 가로막아서는 안 됩니다. 어디에서나 함께 하시는 주님임을 기억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초대하고 주님과 함께 하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때 비로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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