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새벽 묵상 글을 갑곶성지에서 써서 올립니다. 성지순례를 위해 일주일 간 집을 떠나다 보니 집이 얼마나 내게 편하고 귀한 곳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왜 집이 편할까요? 바로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시설이 좋고 화려하고 멋진 곳이라고 해도 집에서 자는 것만큼 편하고 안락하지는 않습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을 자려고 할 때에는 자신이 평소에 베던 베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서 들고 다니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렇더군요. 솔직히 일주일 간 제대로 잔 적이 거의 없습니다. 작은 소리에도 순간순간 깨면서 깊은 수면을 할 수가 없더군요. 그런데 오늘은 어제 일찍 자고 오늘 새벽 일어날 때까지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편안하고 깊은 숙면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익숙함 때문이겠지요.
이렇게 익숙함은 지금의 삶을 편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이 익숙함이 어떠한 고정관념으로 인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한 다른 이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면서 여행을 가지 않는다면? 삶의 새로움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것을 틀렸다고 간주하면서 그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 안에서 아픔과 상처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익숙함이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익숙함의 한계를 인정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익숙함만 맞고 다른 이들의 익숙함을 무시하는 행동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새로움을 인정하면서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도록, 익숙함의 한계를 극복하는 용기와 지혜도 필요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해서 설명해주십니다. 분명히 쉽게 이해되는 비유입니다. 아주 자그마한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된다는 것, 작은 누룩이 밀가루를 온통 부풀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이 비유에 대해서 상당히 기분 나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익숙한 하늘나라는 질서 정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겨자씨는 급속하게 퍼져서 다른 채소에 피해를 주기에 부정한 것으로, 누룩은 부패의 상징으로 일상생활에서 불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생각은 다르셨습니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도 하늘 나라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이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자신에게 익숙한 것만이 옳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익숙함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 새로움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으며 다른 이웃들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하늘 나라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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