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개하는 자리에서 “저는 내성적인 사람입니다.”라고 말을 하자, 사람들이 다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강의 때의 모습이나, 평상시 저의 모습을 보면 절대로 내성적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공간보다는 혼자 있는 공간이 더 편합니다. 또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보다는 혼자서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또 많은 강의를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그렇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런데도 사람들은 제가 내성적이 아니라 외향적인 성격이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이 완전히 반대일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단순히 겉모습, 한 부분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조금 더 깊숙하게 바라보면 또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어느 한 부분만을 바라보고서 하는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요한 6,41)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유대인들은 수군거립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요한 6,42)
단순히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별로 대단하지 못한 분으로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를 선포하시고, 또한 이에 대한 표징으로 많은 기적으로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판단을 내세워서 주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인간적인 기준만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영적으로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정관념은 자신의 성장을 막게 됩니다. 꿈을 갖고 있지 않는 요즘 청소년과 청년들이 문제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성장이 이제 멈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는 내내 성장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년기에도 새로운 일을 하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많은 예들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면서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며 성장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때문인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대인들 역시 고정관념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떨까요?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에서 나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 사랑이신 주님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하는 엘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천사가 준 빵과 물을 먹고서 힘을 얻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되지요. 하느님을 통해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제 주님의 몸을 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세상의 기준을 내세우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기준을 따를 수 있는 참된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2독서의 사도 바오로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에페 5,1)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은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이는 인간적인 고정관념을 내세우면서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사는 삶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고서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할까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 가능성의 크기도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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