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저의 글씨체를 보여주는 것이 참 부끄럽습니다. 왜냐하면 제 자신도 무슨 글씨인지 알아보기 힘든 악필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천재는 악필이다.’라면서 위로도 해주시지만, 솔직히 잘 쓰지 못한다는 부끄러움을 늘 간직하게 만듭니다. 사실 처음부터 악필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글씨를 잘 쓴다면서 학급 서기도 했고, 군대에서도 글은 모두 제가 도맡아 썼습니다. 이러한 제가 지금은 악필의 소유자가 되었을까요?
처음 제 글씨체는 궁서체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서예를 했던 영향을 받아 궁서체로 글을 또박또박 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학교 동창의 예쁜 글씨체를 보게 된 것입니다. 너무 부러워하다보니 그 친구 글씨체를 비슷하게 따라 쓰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친구의 글씨체와 같아지지 않고 아주 이상한 글씨체가 되고 만 것입니다. 군대에 있을 때까지도 글씨를 못 쓴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제가 친구의 글씨체를 따라하면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글씨 정말 못 쓴다.”
다시 저의 글씨체인 궁서체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후회를 하게 되었지요. ‘그냥 내 글씨체에 만족하면서 살 걸.’이라고 말입니다. 남의 떡이 훨씬 커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커 보이는 떡이 나를 성장시켜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내 자신에 집중할 수 있을 때에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쉽다고 하십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분명한 말씀을 하시지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가능한 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심지어 가족까지도 뒤로 하고 모든 정성을 다해 주님을 따르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세상의 다른 것들에 집중해서는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 주님의 뜻에 맞춰 살아가는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집중할 수 있을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내 안에서 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과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내 자신이 집중해야 할 주님의 일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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