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신부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가 한 원로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 신학교 은사 신부님으로 학창시절에 너무나 무서웠던 분이었습니다. 점수도 잘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신학생들을 많이 혼내시기도 하셨지요. 따라서 원로 사목자가 되어서도 예전의 무서운 모습, 화내는 모습을 간직하고 계실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부드럽고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편한 동네 할아버지 같다고 하더군요.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이제껏 함께해 온 사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함께할 사람들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 이 사실을 깨닫다보니 이제는 남을 더 배려하게 되고,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를 먼저 찾게 된단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사람에게 많은 상처를 받고 있는데 그를 굳이 만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상처보다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고, 내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나를 계속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게 어떤 모습을 원하고 있을지가 분명해집니다. 사랑하는 모습, 희망을 보여주는 모습, 그래서 만남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는 모습을 원할 것입니다.
이 모습은 사람들만이 원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이 바로 이것이고, 이러한 모습을 갖춘 사람만이 주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질까요? ‘먼 훗날 그렇게 되어야지.’라고 다짐을 한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실천해 나갈 때 가능한 모습이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시면서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을 준비로 등과 함께 기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왔을 때 환하게 밝힐 등의 기름을 잘 준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다섯 처녀는 그렇지 않았지요. 시간 날 때 준비하겠다는 안일한 마음, 정 급하면 남에게 빌려 쓰겠다는 남에게 의지하는 마음, 신랑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포기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유가 있을 때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겠다는 안일한 마음, 남이 어떻게 도와주겠지 라는 남에게만 의지하는 마음, 주님의 존재를 의심하면서 불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올바른 준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지금 당장 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랑의 마음,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희망의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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