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배려란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상대방에게 해주라는 황금률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배려는 따뜻하고 감사하며 우리 가운데에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나 자주 잊는 배려가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내 안에 좋은 생각,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 역시 배려라는 사실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서 부정적인 말만 쏟아 붓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 곁에 있으면 왠지 불편한 마음이 생겨서 가까이 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그의 부정적인 마음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피해 다른 자리로 옮기게 되지요.
반대로 늘 긍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주위를 환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 곁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합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아도 그와 함께 있으면 힘이 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긍정적인 마음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배려란 직접 말하고 직접 행동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배려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 좋은 생각과 긍정적인 마음이 가득한 사람은 저절로 나의 이웃들에게 배려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이 배려는 남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할 수 있기에 자기 자신 역시 거꾸로 다른 이들의 많은 배려를 받으면서 살 수 있는 여건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마음을 간직하면서 살아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마음이 나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해주기 때문입니다.
행복선언과 불행선언을 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사실 사람들은 세상의 기준들이 채워져야 행복하다고 생각하지요.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사람들이 부러워할 능력과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기준이 채워져야 행복하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굶주리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미움 받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지요. 반대로 부유한 사람들,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정반대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소외되고 아픔을 겪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긍정적인 말과 행동을 간직하면서 주님께 희망을 두며 살아가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 선언의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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