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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6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9-16 조회수 : 362

저를 아시는 신부님들은 저를 향해 종종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신부는 미맹이야.”

맛을 모른다면서 이렇게 놀립니다. 제가 추천하는 맛있다고 하는 집을 가보면 늘 별로라는 것입니다. 신부님들의 말씀처럼 맛을 잘 모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맛을 정확하게 구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습니다. 맛의 기준이 특별하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한번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어느 식당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소위 미식가라는 평가를 받는 친구가 강력하게 추천한 곳이었습니다.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이 집에 대한 칭찬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주문을 하고나서 잠시 뒤에 반찬들을 상 위에 차려줍니다. 이 식당을 추천한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김치 맛을 봐라.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다른 식당과는 김치부터 다르다니까.”

그리고 곧바로 주인아주머니께 “이 김치 직접 담그신 거죠?”라고 묻습니다. 이에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사장님, 죄송한데요... 이 김치... 중국산이에요.”

그 뒤로 미식가로 평가받던 이 친구를 누구도 미식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국내산과 중국산도 구별하지 못하는 입맛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늘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자신의 판단 역시 늘 올바를 수 없습니다. 이는 어느 분야의 전문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가는 비전문가보다 조금 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뿐이지, 이들 역시 실수나 잘못을 행합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입니다. 완벽하신 분은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늘 주님의 기준을 따르고 주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라고 고백한 베드로를 칭찬하셨지요. 이로 인해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이 되었고,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았습니다(마태 16,18.19 참조). 이 정도로 주님의 말씀에 드는 대답이었습니다. 칭찬을 받아서 자신만큼 주님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을까요? 주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자, 주님을 꼭 붙들고서 반박합니다. 이에 베드로를 꾸짖는 말씀을 하시지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

주님의 뜻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에 의한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뜻에 맞춰서 열심히 살지만, 종종 주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내세우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의 뜻은 영광의 자리만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재물을 갖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기준으로 많은 것을 갖고 있어야만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십자가를 피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뜻을 찾으면서 때로는 고통과 시련으로 보이는 자신의 십자가 역시 기쁘게 짊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주님을 굳게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십자가가 너무 무겁다면서 불평불만으로만 일삼는다면 진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순간에서도 주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맞춰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처럼 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데 이 세상에서 어떤 수치를 당하겠습니까?(이사 50,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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