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주에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전국 성지순례의 마무리를 위해서 제주도 6군데와 추자도 1군데를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꼭 들르고 싶었던 곳이 하나 있었지요. 바로 제주도에 있는 조그마한 책방입니다. 어느 가수가 쓴 책들을 좋아하는데, 이 가수가 제주도에 책방을 운영한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습니다. 책방에 가서 그 가수를 만난다고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단지 책 속의 글이 어떤 환경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직접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물론 만났어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책을 쓴 작가로, 또는 책방 주인으로 보지 않고. 단지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을 만나서 사진 찍기 위해 온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저 역시도 다음 책에 못된 손님 중의 한 명으로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그러면서 갑곶성지에 오시는 순례객 중에서 종종 “신부님 보려고 여기에 왔어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연예인도 아닌데 왜 저를 보러 이곳까지 오실까?’라고 생각했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이해가 됩니다. 아마도 이분들도 제가 어떤 환경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오시는 것이겠지요.
우리 삶 안에서 다른 이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길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런데 여기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즉, 입장 바꿔서 생각했을 때 많은 문제들은 사라지고 그 안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찾아옵니다. 그런데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지요. 하긴 예수님의 말씀을 좀 더 가까이 들으려는 사람,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 옷자락이라도 만지려는 사람 등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있었으니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가까이 가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라고 누군가가 알려 줍니다. 그러나 반갑게 맞이하러 나가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하는 예수님을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가족을 외면하는 사람을 어떻게 좋게 보겠습니까? 이 예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뜻을 먼저 헤아려야 합니다. 바로 세상의 기준보다 하느님의 기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지요.
우리는 종종 주님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어떤 고통과 시련의 순간이 찾아오면 이해할 수 없는 주님이라면서 불평불만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지금 내 마음이 주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떠올려보십시오. 주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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