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할 때라고 해도 상대방의 모든 점이 다 좋지는 않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한두 가지는 꼭 있기 마련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것 하나 빼고는 다 괜찮아.”라고 합니다. ‘이것 하나’가 어쩌면 가장 크고 중요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머지를 바라보면서 “다 괜찮아.”라고 말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쁜 이유보다 좋은 이유가 더 많이 보이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 나머지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랑을 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툼과 갈등이 생기면서 미움의 감정이 커질 때에는 어떨까요? 마음에 들지 않는 한두 가지가 왜 이렇게 크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도저히 못 살겠어.”라고 말하게 됩니다. “다 괜찮아.”라고 말했던 것들은 전혀 보이지를 않습니다. 더 나아가 괜찮았던 부분들도 안 괜찮은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바로 미움의 감정이 사랑의 감정을 집어 삼켜서 사랑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랑하며 살 수 있을지, 아니면 미워하며 살 것인지가 결정됩니다. 이는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즉,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도 있고 반대로 주님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기도했던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서 주님께 대한 믿음을 거두는 사람을 종종 만납니다. 바로 자신의 기도 내용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도 내용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믿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에 반해서 주님께서 주신 다른 것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것들을 통해서 충분히 기뻐할 수 있으며 감사해 합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이 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향해 저주의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과 놀라운 기적을 직접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은혜를 입고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질책의 말씀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들은 왜 변화되지 않았을까요? 끊임없이 기적만을 청했다는 성경의 다른 구절을 기억할 때, 자신들이 원하는 한 가지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큰 사랑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또 실천하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뜻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많은 은혜들을 먼저 바라보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완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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