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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7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0-07 조회수 : 379

어느 형제님께서 인터넷에서 공감이 가는 글을 하나 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남자가 살다가 너무 힘이 들 때면 지갑에 있는 와이프 사진을 꺼내본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 사람과도 살고 있는데, 이 세상에 못할 일이 어디 있겠나?’

자신의 심정을 잘 말해주고 있는 글인 것 같아서, 아내에게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아내이지만,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아주었으면 마음에서였지요. 이 글에 대한 아내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어? 나랑 똑같네. 나도 힘들면 당신 생각을 해. 이런 철없는 남자도 데리고 산다면서...”

나만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아내 역시 힘들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나만 힘들다고, 나만 억울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남과 남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면서 어떻게 다툼 한 번 없이 살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모든 점에서 만족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툼이나 분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다투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왜 이런 다툼과 분쟁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하며, 어떻게 이 문제들을 현명하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가정 안에서도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즉, 가정 안에서부터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하느님 나라 역시 사랑 안에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맺은 혼인이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불가해소성(마르 10,9 참조)을 이야기하시면서 사랑의 완성이 가정 안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창조 때에 하느님께서는 혼자 있는 아담을 바라보면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 2,18)라면서 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혼자 있는 삶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상대방을 나의 걸림돌이 아니라, 나의 협력자임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만 힘들고 나만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은 무엇일까요? 상대방을 나의 협력자로 보지 못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는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의 완성을 이룰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5)

어린이들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잠시 뒤에 오랜 친구처럼 사이좋게 놉니다. 상대의 문제점을 찾는데 힘을 쏟아 붓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이 순간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열린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열린 마음으로 배우자를, 자녀를 또 부모님을 맞이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런 열린 마음으로 내 이웃에게 사랑을 주고 있을까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히브 2,11)라고 말합니다. 한 분이신 주님으로부터 나온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 역시 주님을 따라서 거룩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 거룩한 삶이 바로 사랑으로 함께 하는 삶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야 합니다. 즉, 하느님의 뜻인 사랑으로 철저하게 무장할 때 가능합니다. 이를 위해 닫혀 있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만 힘들다고 나만 손해를 본다면서 이웃을 나의 걸림돌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걸림돌이 아닌 협력자인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사랑의 열린 마음을 갖춘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하느님 나라가 그렇게 멀리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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