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의 친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친구 딸도 함께 있었지요.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친구의 딸이 갑작스럽게 제게 묻습니다.
“신부님, 제 아빠가 학창시절에 공부 잘했어요?”
제가 기억하는 이 친구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딸 아이 앞에서 공부를 못했다고 차마 말할 수가 없어서, “그럼, 네 아빠가 얼마나 공부를 잘했는데?”라고 대답해주었지요. 그런데 제 친구가 딸에게 이런 말도 하더군요.
“아빠는 공부를 잘해서 우등상도 받았어.”
딸아이가 잠시 어디를 갔을 때 “너 사실은 우등상 받은 적 없잖아.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렇게 공부를 잘 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라고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의 기억은 그렇지가 않은가 봅니다. “네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지. 나 우등상도 받았었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언젠가 책에서 우리 인간은 참으로 많은 착각 속에 빠진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과대포장 할 때가 많다는 것이지요. 딱 한 번 공부 잘해서 우등상 받은 것을 평생 자신이 공부 잘했던 것으로 착각하고, 어쩌다 누구를 도와주는 것을 가지고 평생 자신이 착하게 산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종종 다른 사람에게 속았다면서 억울해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실상은 자기 자신에게 속을 때가 가장 많았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착각 속에 빠지면 그만큼 진리의 길에서 멀어집니다. 대신 어둠의 골짜기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던 여자를 치유를 해주십니다. 그런데 회당장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다면서 분개합니다. 예수님이 틀렸다며 말합니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맞는 말 같지만, 착각 속에 빠지고 있는 하나가 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선행은 일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잠을 자는 것이나 밥 먹는 것을 일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당연히 잠을 자는 것이고, 당연히 밥을 먹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실천 역시 때와 장소를 골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때에는 무조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착각 속에서 빠져있으니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착각은 무엇일까요? 그 착각이 혹시 진리에서 벗어나게 하고, 또한 주님의 사랑 역시 실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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