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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4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1-04 조회수 : 260

어떤 분께서 자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군대도 다녀왔으며 대학을 졸업했는데 도무지 취업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집에서만 뒹굴뒹굴 놀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에는 얼마나 똑똑했는지 모른다고 또 부모의 말을 한 번도 어기지 않을 정도로 착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아들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게 컸는데, 부모의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저렇게 집에만 있어도 너무 화가 난다는 것이지요. 부모로써 자녀에 대한 걱정은 안 할 수가 없겠지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아들이 지금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랍니까?”

이 질문에 대답을 하시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들에 대한 불만만 가득해서 화만 냈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아내는 남편을, 남편을 아내를, 직장 상사는 부하 직원을, 선생은 제자를, 정치가는 국민을... 내 자신만 맞다는 정당성을 내세우면서 내게 맞추는 사람으로만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신 탓이 아닌 상대방의 탓을 돌립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들어주고, 때로는 믿고 참으면서 기다려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들으려고 하기 보다는 더 많은 말을 하려고 하고 있으며,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찾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내세우는데 더 많은 힘과 정성을 쏟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사랑을 찾기가 힘든 것은 아닐까요?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마르 12,28)라는 한 율법 학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의 말씀인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를 인용해서 하느님 사랑이 첫째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서로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하느님의 창조물인 이웃을 미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첫째가는 계명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고 대답하는 율법학자의 말(마르 12,33 참조)에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마르 12,34)라고 말씀하시지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주님을 통해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만이 구원될 수 있다고 합니다(히브 7,25 참조).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당연히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이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나 중심으로만 이루어질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들어줘야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요? 또한 내 말만 잘 듣는 이웃에게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일까요? 이런 조건들이 채워지는 사랑만을 주장한다면 마치 장사꾼처럼 흥정이나 거래를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동등한 관계가 아닌 내가 우위에 서서 종을 대하듯이 행하는 잘못된 사랑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우리를 배신한 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분을 배신하는 것은 늘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까지 기꺼이 짊어지는 사랑을 보여주셨지만, 우리들은 조그마한 상처에도 불평불만을 터뜨리며 주님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기다리십니다. 죄를 지으면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 기다리셨고, 우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또 우리에게 당신의 더 큰 사랑을 전해주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이제는 올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중심에 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그리고 나의 이웃을 중심에 세워서 사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우리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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