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목소리로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말하는 상담사의 말에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구나.’ 라고 생각하십니까? 회사에서 이렇게 하라고 하니 억지로 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고객이 심한 말을 해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웃으면서 상대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숨길 때에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정 노동자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매스컴에서 자주 소개합니다. 물론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이 깨지면서까지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저는 고등학교 때 감정이 완전히 깨졌습니다.”라는 표현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깨진 감정으로 40년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 깨진 감정의 회복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이 분의 노력은 ‘원망’이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깨뜨린 상대를 향한 ‘원망’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깨진 감정을 회복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부정적인 감정은 나의 모습을 인정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게 만듭니다. ‘나는 안 돼.’, ‘틀려 버렸어.’라는 말을 계속해서 입 밖으로 내뱉으면서 과연 나를 인정할 수 있을까요? 또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감정이 깨졌다면 이를 회복하기 위한 긍정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세워졌을 때, 다른 이들을 향한 사랑도 가능해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을 맞이하여 복음은 성전을 정화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에 그 이유가 담겨 있지요. 아버지의 집은 장사하는 집이 아니라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기도하는 곳, 사랑이 완성되는 곳, 그래서 아버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모두 배제되어 있었고, 대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욕심과 이기심이 판치는 곳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화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 자신 역시 주님을 모시는 또 다른 성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주님께서 원하시는 성전의 모습일까요? 기도하는 곳이고, 사랑이 완성되는 곳이고, 주님을 만나는 곳이었을까요? 내 자신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으면 결코 주님의 훌륭한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계속해서 미움, 화, 다툼 등의 부정적인 마음들을 깨끗이 치우고, 대신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도록 성전 정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라는 성전이 바로 세워져 있을 때,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 힘으로 세상에 사랑을 힘차게 전할 수 있습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