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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1일 _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1-11 조회수 : 355

2018. 11. 11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마르코 12,38-44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가난한 과부의 헌금)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 아낌없이 다 주어라 >


6년 전에 동창 신부에게 간의 2/3를 이식해 주었습니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나머지 1/3의 간이 자라나 온전히 제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간 이식 후에 제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면, 과연 제가 선뜻 이식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간 이식 후에 건강을 회복하고 나서 작은 바람을 하나 가졌습니다. 기회가 되면 신장 하나를 누군가 아픈 이에게 나눠주자고 말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나눠줄 수 있는 장기가 간과 신장 두 개인데, 간은 이미 나눠줬으니, 신장까지 나눠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 바람이 이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3년 전에 갑상선암수술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신장 이식의 기회가 꼭 오면 좋겠는데, 일단 갑상선암으로부터 완치 판정을 받아야 하고, 제 신장이 이식할 정도로 건강해야 하고, 몸의 다른 곳도 이상이 없어야 하니 아직은 첩첩산중입니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이 가장 큰 사랑’(요한 15,13 참조)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제가 목숨을 온전히 바친 것은 아니고 목숨의 아주 작은 부분만 나눈 것이니, 가장 큰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사랑, 아니면 좀 큰 사랑을 실천한 것이 아닐까,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가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뿌듯함도 잠시,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아직 갈 길이 참으로 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밀가루 한 줌과 조금 남은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죽을 작정이었던 사렙타의 가난한 과부는 자신에게 낯선 길손이었을 뿐인 엘리야 예언자에게 마지막 생명 같은 먹을 것을 먼저 내어주었습니다(제1독서). 자신이 가진 것이 일부 큰돈을 다른 사람 보란 듯이 거만하게 헌금함에 넣는 많은 부자들 틈에서, 가난한 과부는 자신이 가진 전부인 생명 같은 렙톤 두 닢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함에 넣었습니다(복음). 우리의 벗이요, 길잡이이신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제2독서). 모두 가진 것의 일부가 아니라, 가진 것 모두를, 곧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실천해야 할 가장 큰 사랑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사랑은 단순합니다.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낌없이, 이리 재고 저리 재지 않고 그저 모두 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모두 내어주는 삶으로, 사랑의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이러한 삶과는 반대되는 더 가지려고 안달이 난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삶에 대해서 경고하시면서 말입니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인가요? 우리는 지금까지 어떠한 삶을 살아왔나요? 가난한 과부의 삶인가요? 아니면 많은 부자들의 삶인가요? 우리는 누구를 닮으려 하나요?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인가요? 아니면 섬김을 강요하는 율법학자들인가요? 우리 교회는 어떤가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나요? 아니면 세상 위에 군림하여 스스로의 거룩함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나요?


우리의 대답에 부끄러움이 묻어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까닭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이고자 묵묵히 헌신하는 벗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 무수한 벗들 가운데 하나일 수 있기를 이 시간 다짐합니다.


오늘은 평신도주일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온 누리에 전하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세상과 호흡하며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시는 모든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감사의 마음을 담은 묵상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 믿음의 벗님들께 >


- 평신도 주일에 드리는 고마움의 인사 -


짙은 어둠 가득한 세상 속 깊이

복음의 빛이 되어 나아가는 벗님들은

온 세상과 모든 이와 하나 되시기 위해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강생(降生)의 성사(聖事)입니다.


약하고 허물 가득한 성직자 수도자들조차

주님을 모시듯 섬기는 벗님들은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러 오신 주님 닮아

온유와 겸손의 삶을 살아가는

섬김의 성사(聖事)입니다.


미리내 이루는 수천수만 이름감춘 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제 자리 지키는 벗님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곱게 닿아

온 세상 곱게 품는 하나의 교회 이루는

어울림의 성사(聖事)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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