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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5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2-25 조회수 : 279

12월 25일 [성탄 대축일 낮미사] 
 
어제 밤 미사의 전례는 하느님 아들의 탄생의 신비에 대한 흥분과 두려움으로 차 있다고 한다면 오늘 낮미사는 기쁨 외에 서정적이고도 풍부한 신학적 내용으로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본기도에서는 “하느님, 저희를 하느님의 모습으로 오묘히 창조하시고 더욱 오묘히 구원하셨으니, 사람이 되신 성자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하면서 인간이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신 아들을 통해 이미 신성(神性)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신학적인 사색을 보여준다. 
 
복음: 요한 1,1-18 :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14절)는 말은 단순히 하느님께서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우리와 같은 나약성, 죽음, 한계성, 죄와 더불어 존재해야 하는 일반적 의미의 인간의 의미보다는,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항구한 ‘거처’를 실현시키셨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와 함께 계셨다’는 표현보다도 ‘우리 가운데 그분의 장막을 치셨다’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광야생활을 한 것처럼, 예수님의 유랑체험 또한 계약의 ‘장막’ 안에서 당신의 백성과 함께 계신 야훼의 현존(출애 25,8; 민수 35,34)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중의 한 사람이 되어 인간에게 다가오셨다. 
 
그분은 말씀이시며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신 분이시며, 하느님과 함께 창조주이심을 복음은 고백하고 있다. 즉 나자렛 예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강생의 기적 안에서 당신 자신의 작품을 만드신다.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그분이 당신 스스로를 시공 안에 가두시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을 ‘영광’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14절). 
 
즉 하느님 사랑의 위대함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바로 스스로의 낮춤을 통해 들어 높여진다는 사실을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십자가상의 죽음’이 곧 하느님 아들의 ‘영광을 받음‘의 표현이라고 가르친다(요한 12,23-24). 그리스도의 ’영광‘은 죽는 밀알 하나가 되는 데서 이루어진다. 바로 그 죽음이 모든 인간에게 구원의 열매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은 이렇게 역설적이면서도 결국 애매모호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그분을 거절할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11절). 이 ‘백성들’이란 예수께서 유다 베들레헴에 빛으로 태어나셨을 때나, 그분의 공생활 동안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 그분을 매달았던 당시의 유다인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생활 속에 받아들였으며 받아들이고 있는지, 더 솔직히 말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발견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생활 속에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신앙을 통해 순진한 어린이나, 죄 없는 한 인간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당신의 충만한 은총을 나누어주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존재로 스스로를 낮추신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12-13절). 즉 우리는 그분을 맞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육이나 육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루가 1,35 참조).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인간은 하느님과의 친교를 가질 수 있다. 
 
즉 우리에게 오시는 그분을 맞아들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구원의 은총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의 성탄 자체가 우리에게 충만한 은총이다. 그 은총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형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당신 자신의 신분을 우리 인간에게 신비스럽게 참여시킴으로써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신다. 
 
진정으로 성탄의 신비는 단순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는 신비이다. 매 순간의 삶에 충실하여 그 안에서 성탄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면서 이 미사를 봉헌하자. “여러분들 가정에 우리 가운데 오시는 주님의 풍성한 강복을 빕니다!” 아멘!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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