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교회는 성탄 후 제8일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낸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는데 유일한 도구가 되셨던 마리아를 이 기쁨의 시기에 기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생명의 탄생이란, 아기뿐 아니라, 아기에게 자기 생명을 전해준 어머니에게도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심으로써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 마리아의 축일을 오늘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은 성탄 후 제8부 축일이며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이날, 예수님을 우리에게 낳아주심으로써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 마리아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분의 전구에 힘입어 자녀들의 행복과 평화와 축복을 기도한다.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성모님께서는 어느 것도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모든 여정을 마리아의 모성애적인 전구와 돌보심에 맡김으로써 인생의 여정 중에 위험, 불안, 실망, 고통 등이 닥치지 않기를 기도한다.
복음: 루카 2,16-21: 목자들의 경배와 할례 받으신 예수.
오늘 복음에서는 목자들이 천사의 기쁜 소식을 들은 후 급히 베들레헴으로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16-20절)
여기서 보면 주인공은 바로 그 ‘아기’이다. 목자들이 급히 달려간 것은(16절) 그 아기를 보기 위한 것이었고(17절) 천사들로부터 들은 그 모든 것도 그 아기에 대한 것이었으며(17절) 목자들이 돌아가면서 ‘듣고 본 모든 것’(20절) 말하는 내용들도 그 아기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기쁨에 넘치면서도 깊은 생각에 잠기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난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19절) 이 표현은 성전에서 예수를 찾는 장면(루카 2,51 참조)에서도 나온다. 마리아는 당신 아들에 관계되는 어떤 사건에서 놀라고 계심을 암시한다. 마리아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누가 목자들을 그리로 보냈을까? 마리아는 여기서 무엇을 알아들었을까? 하느님께서는 이 아기에게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시는가? 하는 것에 잠기었을지도 모른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해 깊이 묵상하며 마음 깊이 받아들이면서, 그 아드님 위에 펼쳐지는 하느님의 계획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깊이 새겨 마음에 간직하는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한다. 이렇게 마리아는 서서히 어머니의 역할을 이루어 가시며 그 역할은 아드님의 성장과 더불어 무르익어 간다.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21절) 할례를 통해서 비로소 그 아기는 율법으로 선민이 되며(창세 17,2-17 참조) 계약에서 자신의 역할을 표현하는 이름을 받는다. 여기서 어머니인 마리아는 천사가 일러준 대로 이름을 지어준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1) 이름은 그 사람의 역할을 말해준다. ‘예수’는 ‘여호수아’와 같으며 그 뜻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의미이다.
이 이름이 천사가 알려준 것이며 그것은 그분의 사명이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어머니의 역할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중재자이며 해설자일 뿐이다. 여기서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아들도 된다는 사실은 이미 깊은 신비를 포함하고 있다. 마리아의 마음과 믿음이 그리스도를 잉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도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분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들어 높임은 바로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들어 높임이다. 그래서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선포하셨다.(1964년 11월 21일)
이렇게 보면 마리아는 ‘모든 사람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이 평화의 날, 제1독서는 사제가 모든 백성들에게 축복을 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24-26절)
여기서 평화는 우리를 하느님과 형제들과 올바른 관계에 있도록 해주는 모든 영적인 선으로부터 먹을 것, 입을 것을 포함하여 모든 물질적인 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의 충만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 세계는 절망적일만큼 평화가 깨어지고 있다. 즉 전쟁, 불의와 억압, 수많은 폭력과 테러 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력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우리는 평화가 없이는 인간성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도 더 절감하고 있다. “인간성이 전쟁의 종말을 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 인간성의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J.F. 케네디)
이렇게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이 새해의 문턱에서 우리는 하느님만이 온 세상을 평화로 이끌어 가려 노력하는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따뜻한 미소가 악마의 모습으로 줄달음치고 있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 서로가 한 형제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시지 않을까?
오늘 새해 첫날이며 세계평화의 날 미사를 바치면서, 진정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어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결심하고 언제나 깨어있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하자.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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