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형제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신부님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니까 얼마나 행복하세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살고 있을까요? 세상 그 누구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살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세상은 혼자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지요. 사람은 다른 동물처럼 빠른 발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하늘을 나는 날개도 없습니다. 또한 강력한 치아도 없으며 힘도 그렇게 세지 않습니다. 이렇게 약한 인간이라는 것은 그만큼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정진하면 되고,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그저 순리대로 닥쳐오는 상황을 해결하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이 안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불평불만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인생임을 기억하면서 힘차게 살아간다면 분명히 인생의 주체가 되어서 인생이 내 안에서 살아지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분명히 변할 수 있습니다. 쿠바의 ‘체게바라’는 의사였지만 혁명가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였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이들이 처음의 삶과 다른 삶을 살도록 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변화를 통해서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삶 역시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변화는 가치를 찾을 때 이루어집니다. 가치가 없다고 하는데 굳이 고통과 시련을 맞이할 필요가 있을까요? 가치가 없는데 이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겠습니까? 가치를 발견하면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오늘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안에 있던 더러운 영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스스로를 수가 많기 때문에 ‘군대’라고 이야기하지요. 마귀들의 군대 전체가 한 사람의 몸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더러운 영이 들린 이를 사람들은 모두 포기했었지요. 족쇄와 쇠사슬도 풀 정도로 막강한 힘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엄두가 나지 않아 피하는 마귀들의 군대 전체에 맞서시고 그 비참한 인간을 건강하게 해주십니다.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마귀들이 떼거지로 밀려와도 모두 물리치시는 전지전능하신 주님께 향할 의지를 먼저 갖추고 주님께 매달리기 위해 작은 행동이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작은 행동들이 변화를 가져오면서 모두와 함께 살아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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