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말씀을 듣기!
잠에 빠져 있다가 깨어나서 얼떨결에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었던 베드로 사도의 내공이 참 대단해 보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베드로 사도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도 예수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오늘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초막을 짓고 머물러 살고 싶은 그곳을 떠나 예수님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그 길을 끝까지 잘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되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그 선물을 받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면 안 되겠지요.
사순 시기 두 번째 주간을 지내면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어떤 것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깊은 사랑의 고백이 되겠습니까?” 첫째는 ‘너는 내 안에 있어. 너는 내 마음 안에 있어.’ 둘째는 ‘나는 네 안에 있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깊은 사랑의 고백일까요?
사실 이 두 고백에는 덧붙여지는 말이 있는데, 이것을 보면 답이 명확해집니다. 첫 번째 고백인 ‘너는 내 안에 있어.’에 덧붙여지는 말은 ‘내가 내 마음대로 사랑해 줄게.’라는 것이고, 두 번째 고백에 덧붙여질 말은 ‘그러니까 네가 나를 어떻게 해도 상관없어. 나를 너에게 맡길게.’라는 것입니다. 굳이 답을 말하자면 두 번째 고백이지요.
제가 보기에 베드로 사도가 ‘초막 셋을 지어드리겠다.’고 한 말은 첫 번째 고백에 해당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두 번째 고백에 해당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내가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주님께서 지금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를 생각하면서 주님의 뜻을 살려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것을 명확히 아셨기 때문일까요?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하십니다.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는 한 주간이 되시길 빕니다.
글. 최규화 요한 세례자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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