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10만원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받은 돈 10만원을 낯선 사람 한 명과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눠 준 돈을 받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에 얼마를 받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낯선 사람에게 얼마를 주겠습니까?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실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결과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낯선 사람에는 1,000원 이하를 주고, 스스로는 99,000원 이상을 취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저의 예상에서 벗어났습니다. 대부분 30~50%에 해당하는 돈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30% 이하는 불공평한 것으로 느꼈던 것이지요.
인간이 기본적으로 인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인간이 관대하다는 것을 이 실험에서는 우리들에게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대함을 저버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어쩌면 인간됨을 버리는 사람이 아닐까요?
관대함이 바로 ‘사랑’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마음이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려고만 노력할 때입니다. 또한 상대방을 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단순히 경쟁자로만 생각할 때였습니다. 그때는 관대함이라는 사랑은 사라지게 되고 철저하게 인색한 모습으로만 남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하나하나 창조하실 때, “보시니 좋았다.”라고 성경 저자는 말해줍니다. 언제 과연 보기가 좋습니까? 사랑이 가득한 곳이 그냥 좋습니다. 그러나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곳에서는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을 떠올리면 주님께서 하신 오늘의 말씀이 이해됩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문다는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직접 실천하신 사랑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하느님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게 사는 것이고, 보시니 좋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이고, 이러한 진리 안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이 됩니다.
실제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재물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거짓된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 인간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는 사랑 안에서 자유로운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과연 어떠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았는지를 반성해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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