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창신부가 주임신부로 있는 성당에서 사순특강을 했습니다. 늘 그렇게 했듯이 강의 시작 2시간 전에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예전에 강의 시간에 딱 맞춰서 출발했다가 늦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찍 도착한 뒤에는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강의 원고를 한 번 더 살펴보고 책을 읽습니다. 그런데 본당 근처에 카페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큰 건물에는 카페가 한 두 개씩은 있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더군요. 또 다른 건물을 찾아갔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돌아다니다가 도저히 없을 것 같은 외진 곳에서 근사한 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에는 없었고,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이런 의외의 일들을 참 많이 겪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런 의외의 일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만이 맞을 것으로 착각하지요. 그러나 실제에서는 자신의 느낌을 벗어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왜 일까요? 어쩌면 생각하지 않고 느낌대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분명히 긍정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느낌으로만 받아 들으려하니 여기서 부정적인 말과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인들을 묵상해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마귀가 들렸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대로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 그리고 직접 보여주셨던 많은 표징들을 생각했더라면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느낌대로 하면서 돌을 집어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고 복음은 전해줍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유다인들은 느낌대로 돌을 던져서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하지만, 이는 자신의 느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은 유다인들의 느낌이 아니라, 주님의 의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끊임없이 자신의 느낌이 진실인 듯이 착각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느낌만으로는 올바른 모습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더 깊이 생각하고 생각해야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분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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