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합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예루 살렘에 들어가셨을까요? 오늘 1독서인 이사야서는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를 말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이사 50,6-7). 예수님께서 박해자들 에게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시고 챙기신 단 하나는, 당신을 도와주시는 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참 하느님이신 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온전히 사람들의 손에 내맡기시어 가장 가난한 자가 되셨는데, 사람들은 특히 빌라도와 헤로데, 그리고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한껏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이신 분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만, 그분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습니다. 빌라도는 선심쓰듯 예수님을 헤로데에게 보내기도 하고, 백성들의 요구에는 죄 없는 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내줍니다. 군사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업신여기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 하나도 예수님을 모독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도망가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가난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이 가난한 분 안에서 하느님의 위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당신 때문에 통곡하는 여자들을 위로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힌 또 다른 죄수 하나에게는 천국 낙원을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위로는 당신을 부인한 베드로를 바라보신 그 눈빛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은 베드로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셨을까요? 책망의 눈빛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무엇 때문에 그리 슬피 울었을까요? 베드로는 지금까지 자신의 힘과 능력, 열의 때문에 주님께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베드로는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을 배반한 지금 이 순간, 베드로의 인간적인 노력은 물거품이 됐지만 주님의 사랑은 극명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그 사랑을 미처 몰랐던 죄송함에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것이 당신의 수난에 함께 하고 싶어하는 제자에게 주신 위로의 선물이 아닐까요?
자, 가난한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들어갑시다. 가난해지는 것을 두려워 말고,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주님과 함께,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예루살렘으로 갑시다. 우리가 가난해지는 그곳에서, 주님이 우리를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글. 최규화 요한 세례자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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