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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6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4-16 조회수 : 405

4월 16일 [성주간 화요일] 
 
이사야 49,1-6
요한 13,21ㄴ-33.36-38 
 
< 유다 이스카리옷은 떠나갔지만, 시몬 베드로는 돌아왔습니다! >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때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조만간 펼쳐질 당신의 미래와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의 머릿속은 참으로 산란하셨을 것입니다. 
 
이런 순간 참으로 큰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그저 묵묵히 함께 동반해주는 사람, 그의 걱정과 고민에 함께 가슴아파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큰 위로와 격려가 될것입니다.  
 
예수님과 3년 세월 동안 동고동락했으며, 심혈을 기울여 교육시킨 사도들이 그런 존재가 되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깨달음에 완전히 도달하지 못했던 사도들이 보인 모습은 참으로 미성숙했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재무 담당이란 중책을 맡고 있던 유다 이스카리옷을 한번 보십시오.  
 
그는 호시탐탐 난파선 같은 제자단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는 제자단을 떠나기 전에, 나가서 먹고살 방도를 마련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제자중의 으뜸인 수제자 시몬 베드로 역시 도진개진이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그가 비장한 각오로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요한 복음 13장 37절)라고 외치고 있지만, 조만간 주님을 세번이나 배반할 정도로 믿음이 약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피비린내가 풀풀 풍기는 골고타 언덕으로 올라가셔야 할 시간인데, 수제자라는 사람은 배반 예정자, 제자단의 총무라는 사람은 이미 배반자로서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도들 역시 오십보 백보였습니다. 
그 어떤 존재로부터의 위로나 공감도 받지 못한 채, 철저하게도 홀로 당신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뒷모습이 참으로 슬퍼보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그 절박한 순간에도 끝까지 배반자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에게 기회를 주시며 기다리십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신을 이미 명확하게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만일 제가 예수님 같았으면, 최초로 알게된 순간, 즉시 불러 사정없이 야단을 쳤을 것입니다. 
당장 그간 해먹은 돈 게워놓고 제자단을 떠나라고 밀어붙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신 행위에 대해 철저하게도 함구하십니다.
혹시라도 그가 다시 마음을 바꿔먹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십니다.  
 
놀라운 사실 한 가지 마지막으로 유다가 뛰쳐나갈 순간까지 다른 사도들은 유다의 배신행위에 대해 몰랐던 것입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배신했지만 시몬 베드로는 돌아왔고, 유다 이스카리옷은 떠나갔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 역시 돌아만 왔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의 결단입니다. 
우리 역시 수시로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예수님을 배신합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우리의 회심을 기다리십니다. 
 
어쩔 수 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인 우리들입니다. 
살다보면 본의아니게 그분을 떠나갈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도 배신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처럼 영원히 떠나가서는 안되겠습니다. 
가던 걸음 멈추고, 다시 한번 주님께로 돌아서야겠습니다. 
시몬 베드로처럼.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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