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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1일 _ [복음단상] 최규화 요한 세례자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4-21 조회수 : 354

빈 무덤으로 충분할까요?


언젠가 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 앞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가이드가 성당 옆에 있는 세례당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설명을 마친 가이드는 ‘설명을 다 들었으니 굳이 입장료를 성당에 내고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아니 저 사람들이 그 많은 돈을 내고 가이드의 말을 들으러 온 건가? 성당에 들어가서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야 할 사람이 도리어 막고 있으니…’  


빈 무덤이 어떻게 예수님 부활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부활의 증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본 것은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던 것과, 아마포와 수건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돌아가신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요한 복음사가가 마리아 막달레나를 통해 말하고 있듯이, 많은 사람이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간 사건’이라고 생각하기에 딱 좋은 상황입니다. 예수님 부활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고 오늘이 가장 중요한 축제일이라면 적어도 우리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도대체 요한 복음사가는 그리고 교회 공동체는 왜 오늘같이 중요한 날 이렇게 빈약하고 가난한 복음의 상황을 그대로 나누고자 하는 것일까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복음사가가 우리에게 안내하는 빈 무덤에 조용히 앉아 있어 봅시다.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가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지’ 하고 기대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고, 조용히 빈 무덤의 공기를 들이마셔 봅시다.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것으로 충분했던 것은 아닐까?’ 사람들에게 부활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이해시키는 것보다,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상황을 그대로 전하면서 자신들이 체험한 그것을 우리도 체험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요? 

빈 무덤에서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말씀만이 저의 마음을 뛰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셨습니다”(사도 10,40).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그곳에서, 하느님께서 우리 주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그 가난한 상황에서, 우리는 가장 큰 것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방식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신 위대한 일을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사가에게 그리고 교회 공동체에게 빈 무덤은 하느님께서 돌아가신 주님을 일으키신 귀한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파스카가 일어나는 귀한 곳입니다.


글. 최규화 요한 세례자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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