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 3,7-15 :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7절)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태어남을 의미한다.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당신과 함께 머무를 자녀들을 낳으신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말씀과 성사로 태어났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8절) 즉, “너희는 그분의 소리를 들을 테지만 그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말씀이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보고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성령을 보지 못한다. 어떻게 성령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시편 노래가 바로 성령의 소리이고 복음 선포가 바로 성령의 소리이며 하느님의 말씀이 바로 성령의 소리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한다. 우리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성령 안에 살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령에서 태어난 이도 이와 같다.”(8절)고 하신 것이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9절)니고데모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운 듯하다. 이 태어남에 대해서도 구약과 관계가 있다. 창조된 첫 사람의 갈빗대로 만들어진 여자,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의 잉태, 물로써 행해진 기적들, 예를 들면, 갈대바다를 건넌 일, 천사가 물을 출렁거리게 한 못, 요르단 강에서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깨끗하게 된 일 등, 이 모두가 미래에 이루어질 영적 태어남과 정화의 상징이다. 이사악도 이러한 탄생의 예형이었다. 이런 것을 암시하듯이 예수님께서는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10절)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11절) 아드님은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이시기에, 증언을 하실 때 복수로 ‘우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새로이 태어남과 당신이 하느님 아버지에게서의 탄생과 비교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의 새로이 태어남은 하늘의 일이기는 하지만,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아드님의 탄생에 비교하면 우리의 일은 세상의 일인 것이다. 그 세상일도 그들은 믿지 않는다고 하시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12절) 하신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13절) ‘하늘에서 내려온 이’라는 말은 그분의 기원이 성령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분은 말씀으로서는 하늘에 계시며 육으로는 사람의 아들이시다. 그 육의 기원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성령께 있다. 그래서 육이 되신 말씀은 비록 육이시지만 결코 말씀이 아닌 적이 없으신 분이다. 그분이 내려오신 것은 우리가 올라가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땅에 속한 인간이 하늘에 속한 존재가 될 때, 영적 탄생이 이루어진다. 즉 그리스도께 결합될 때, 그리스와 함께 올라가는 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14절) 십자가가 들어 올려져 땅 위에 나타난다. 그 십자가는 영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십자가 위에서 흠숭을 받으시고 십자가로 선포되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이다. 뱀은 세상의 모든 인간을 집어 삼키던 죄를 의미한다. 그 뱀을 들어 올린 표징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분을 통하여 그 뱀에게 죽음을 선고되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저주를 받게 된 자들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15절) 우리의 생명을 위해 하느님께서 아들을 선물로 주셨다.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며 영원한 생명의 원인이시다.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다른 이들의 생명을 구하신 분이 죽음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믿는 이들이 멸망하지 않았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어찌 멸망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께서 더 확실한 생명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 신앙인들은 그분이 입으신 영광을 향하는 삶을 갖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그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영광을 입으셨으니, 우리가 그분을 닮는 것, 즉 우리도 우리가 지고 가는 나 자신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 영광을 입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바로 나 자신의 인간완성을 이루어줄 뿐 아니라, 하느님 앞에 또한 영광을 드리는 길이며,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이러한 은총을 청하며 열심히 기도하자.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