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5월 1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5-01 조회수 : 274

5월 1일 [노동자의 성 요셉] 
 
목수로 일한 요셉 성인은 ‘노동자의 수호자’로 공경을 받고 있다. 1955년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해마다 5월1일을 ‘노동자의 성 요셉’의 기념일로 지내도록 선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모시고 있다.  
 
복음: 마태 13,54-58 :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께서는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그러나 이 회당에는 악의에 찬 믿지 않는 군중이 모여 있었다. 사랑이 아니라 미움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셨을 때 그들은 놀랐다고 한다. 그것은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찬양하는 마음이 생겨서가 아니라, 시샘 때문이었다. 그들의 교만은 주님께서 완전하게 가르치시는 것을 깨달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54절)라고 한다. 그들은 지혜를 주시고 놀라운 일을 가능케 하시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솔로몬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아직 어릴 때,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오만이 아니라 덕으로, 교만이 아니라, 지혜로,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왕위를 받아들였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지혜를 받기를 바랐고, 진심으로 그것을 청하여 그것을 받았다. 주님의 가르침과 기적을 보면 그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나자렛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고 있다.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55절) 주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신다. 그분의 가르침에서 나타난 지혜와 기적에 대해 감탄을 하면서도, 그들의 불신은 진실을 보는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인간 안에서 그런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들먹이며 그분에게 이런 능력이 생겨나게 할 어떤 실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시샘으로 눈이 어두워졌다. 
 
“저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성경을 잘 알까?”(요한 7,15)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몹시 놀라고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그분을 믿지 않고 못마땅해 하기만 했다. 그들은 그분 말씀의 권능에 놀라고 감탄해야 했지만 오히려 그분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을 안다는 이유로 그분을 무시하고 만다. 우리는 이웃을 보고 그에 대한 선입견으로 그를 무시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기며 상대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하며 이웃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57절) 이 말씀은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유대아라고 하는 것은 넓은 의미로 예언자들의 고향이다. 이스라엘 전체가 그들의 혈연관계로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예언자들은 이스라엘로부터 박해를 당했다. “예언자들 가운데 여러분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사도 7,52)라는 말씀대로 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정의를 부르짖으며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예언자들을 박해하였고 죽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항상 예언자들은 이렇게 박해를 받는다.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58절) 믿음이 없어 자격을 지니지 못한 이들에게는 권능이 힘을 쓰지 않으신다. 그분에 대한 놀라움이 커져 갔는데 왜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을까? 예수님께서는 기적이 보여주는 광경이 아니라 기적의 소용을 중요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기적이 소용이 없을 때는 행하지 않으셨다. 단지 몇 번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그들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루카 4,23)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저자가 기적을 일으켰더라면, 우리도 믿었을 텐데’하고 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나의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남을 판단하는 것은 바로 나를 판단하는 것이다.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직업과 가족관계를 가지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전혀 틀리는 경우가 많다. 고향 사람들의 잘못을 우리가 반복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 그분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자.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