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이 하나 있습니다. 이 저울이 수평이 되어 움직이지 않을 때는 언제일까요? 양쪽 저울 위에 똑같은 무게가 놓였을 때입니다. 그렇다면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양쪽의 무게가 달라질 때, 그러니까 한쪽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더 무거워지면 그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한쪽이 49.5kg, 다른 쪽이 50.5Kg이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집니까? 혹시 겨우 0.5Kg 차이니까 그대로 수평을 이룰까요?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100%의 행복이 굳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 0.1%라도 행복의 무게가 더 나간다면 분명히 행복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100%의 행복만을 원합니다. 그러다보니 100%의 행복을 만들지 못하는 불행의 이유를 찾아냅니다. 찾으면 찾을수록 눈에 보이는 것이 이 불행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불행의 무게가 더 나가게 되는 것이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평화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특히 마음속은 어떠할까요? 전쟁터가 따로 없을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행복은 대단한 것에서만 오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의 평화로움,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메시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감미로운 음악, 하늘과 안개 그리고 별 등을 통해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의 무게를 더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50%가 넘는 행복으로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하지요.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통해서는 마음이 산란해지지도 또 겁을 내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외적인 평화일 뿐입니다. 즉, 잘 사는 것처럼 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그저 겉으로만 평화스러워 보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많은 것을 소유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싸우는 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평화롭지만 마음의 혼란은 대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마음에 혼란이 없는 내적인 평화입니다. 그래서 굳이 많은 것들을 소유할 필요가 없으며 누군가를 누르고 높은 곳에 오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를 위해 나누고 배려하는 참 행복의 삶을 삽니다. 행복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여지게 합니다. 어떤 평화를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추구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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