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일
평화는 나눔이 공평할 때 찾아옵니다. 모두 배부르고 따뜻하면 평화롭습니다. 또한, 평화는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을 때 찾아옵니다. 내게 넉넉한 힘이 갖추어져 있으면 평화롭습니다. 그리고 평화는 만족할 때 찾아옵니다. 걱정거리가 없으면 평화롭습니다. 한가로이 앉아서 커피 한 잔에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면 그만한 평화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공평한 나눔도, 힘의 균형도, 만족스러운 욕망도 찾기 힘듭니다. 그래서 평화롭지 않습니다. 서로 눈치 보며 경쟁하고, 다투어 차지하고, 쾌락을 탐닉하며 불안해합니다. 소소하게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마저도 평화롭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에는 조건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평화입니다. 또한, 조건이 사라지면 이내 깨지고 맙니다. 그래서 불안한 평화입니다. 높은 담장을 쌓고 경비를 둔 채 철저한 감시를 통해 그 안에 갇혀서 누리는 평화는 교도소 수인이 창살 사이로 누리는 한 줄기 햇살의 따사로운 평화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조건이 간단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성령을 믿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성령은 믿는 이 안에서 활동하시며 가르치고 인도합니다. 성령은 바람과도 같아서 어디로 불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불어가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주님은 내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실까요?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나의 길을 성령께 맡겼는데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평화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달리 가더라도, 주님의 뜻이 거기에 있다면 그대로 순응하며 받아들이면 그뿐입니다. 두리번거릴 것도, 조바심낼 일도 없습니다. 어련히 알아서 좋은 몫을 주시겠습니까? 그저 이끄시는 대로 나아가면 될 일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참 쉽고 간단해서 좋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을 앞두고 제자들을 준비시키십니다. 비록 앞으로는 눈으로 직접 주님을 뵙는 일은 없겠지만 새롭게 내려오실 성령께서 인도하실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제자들을 안심시키십니다.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이, 평화로이 믿고 기다리라고 당부하십니다.
글 이근덕 헨리코 신부(수원교구 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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