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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2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6-02 조회수 : 273

6월 2일 [주님 승천 대축일] 
 
승천의 의미는 무엇이냐? 승천이란 것은 예수님께서 지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지형학적 이동”이 아니다. 승천의 의미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에 들어가실 때, 그 지체인 우리도 함께 “들어 올려짐”을 의미하며, 또한 이 “들어 올려짐”이 성령 안에서 이미 이 세상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쁜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함으로써 그분의 영광은 그리스도를 자신 안에 모신 사람이면 어디든지 그 빛을 비추어주기 때문에 바로 ‘하늘’은 우리에게 더 가까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제1독서: 사도 1,1-11: 하늘로 오르신 예수님 
 
사도행전에서 보면 주님의 승천은 마지막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즉 성령의 때의 시작인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사건이다. 주님의 승천은 그리스도와의 이별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의 생활에 더 깊이 참여하고 계시는 사건이다. 제자들은 ‘며칠 뒤에’(5절) 성령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성령 안에서 제자들은 스승과 이별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보다 가까이‘현존하심’이라는 것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는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6절) 이 질문은 지상주의적 메시아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사실은 성령의 선물과 더불어 ‘마지막’ 때가 올 것이며 그렇게 되면 참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건설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 질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점성가들이나 하는 그런 계산에 몰두하지 말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세상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증거하는 그들의 활동을 통해서도 오기 때문이다. 이는 계속 되어야 할 일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시고,사람들은 그분을 쫓아 하늘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현실을 일깨워준다. 그 현실은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마지막 날 역사의 심판자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때까지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온 세상에 그분을 증거 해야 한다. 지금 이시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을 보다 더 사랑하여 우리가 기다리는 ‘새’ 세상의 보다 나은 징표가 될 수 있도록 변형시켜 나아가야 할 때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승천’은 이 땅을 탈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금씩이라도 ‘정의가 깃들일’ ‘새 하늘’과 ‘새 땅’(2베드 3,13)이 되어 구원의 장소가 되도록 하라는 권고라고 할 수 있다. 
 
복음: 루카 24,46ㄴ-53: 예수님께서는 강복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셨다. 
 
우선 사도들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모든 사람을 위해 베풀어진 ‘죄의 용서’에 대한 선포를 해야 한다. 그것은 죽음을 감수하면서 까지도 했던 것인데 그것은 성령을 체험하고서이다. 그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가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성령의 선물 역시 우리가 이미 말했듯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광’과 ‘권능’을 결정적으로 취하시게 되는 ‘승천’의 결실이다. 여기서도 주님의 ‘승천’이 지형학적으로 제자들과 ‘멀어짐’이 아니라, 그들에게 더 가까이 계시다는 의미이다. 
 
또 하나는 ‘강복하시며’(51절) 하늘로 올라가시는 모습이다. 그 모습은 지성소에 들어가는 히브리 대사제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사도들로 표현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경배하며 계속해서 주님께 찬미를 드린다. 전례거행 특히 성체성사의 거행은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의 간격을 없애준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해주는 성사적 행위를 할 때,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게 된다.하늘에 올라가신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계셨을 때보다 우리에게 더 가까이 계신다. 
 
제2독서: 에페 1,17-23: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독서에서 여러 개념을 써서 그리스도의 승천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의 승천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든 능력을 초월해 계시는 세상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왕위에 오르신 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승천’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는”(23절) 교회의 주님이 되게 하신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구원의 능력과 축복으로 끊임없이 채워주시는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는 교회 안에서 반복되지 않을 수 없고 새로워지지 않을 수 없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에페 2,6-7) 
 
이러한 바오로 사상을 배경으로 성 레오 대교황은 로마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이렇게 권고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우리의 고양이기도 합니다. 머리의 영광이 앞서 이루어진 곳에 지체의 희망도 있게 됩니다.그러니 우리는 기뻐합시다!”(S. Leone Magno,Sermo in Ascensionem)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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